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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예산 어디에 썼는지 공개되나…회계 감사·공표 의무 강화 추진(종합)

최정훈 기자I 2022.12.26 16:09:48

고용부,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 발표
“노조 깜깜이 회계 바로 잡는다…노동시장 개혁 일환”
회계감사원 자격·조합원 공표 구체화…“시행령으로 가능”
한국판 ‘랜드럼-그리핀법’되나…“독립성·전문성·투명성 확보해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정부가 ‘깜깜이 회계’라고 비판받는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한다. 전문성이 없는 노조 회계 감사와 운영상황을 조합원에게 공표하는 의무가 없는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조처다.

또 제도 개선에 앞서 내년 1월 말까지 1000명 이상 노동조합에 재정 관련 서류를 비치 의무를 이행하도록 지도해 노조 자율적으로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게 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조 깜깜이 회계 바로 잡는다…“노동개혁 일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노동조합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고용부는 이번 방안을 노동시장 개혁의 일환으로서 노사관계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전했다.

이 장관은 “1987년 이후 양적으로 성장한 우리 노동조합은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노동조합의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개되는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커지고 있으며, ‘깜깜이 회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번 방안을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조의 예산은 대부분 조합원이 낸 조합비에서 나온다. 한국노총은 연간 138억원, 민주노총은 연간 200억원가량 예산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중앙 정부 지원금의 경우 민주노총은 본부가 입주한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 내는 보증금 약 30억원을, 한국노총은 약 26억원을 지원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의 불투명한 회계 내역은 ‘깜깜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행 노조법에도 노조의 회계 관리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다. 그러나 회계감사가 공인회계사와 같은 자격을 갖춘 외부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내용도, 정부에게 제출할 의무나 조합원 모두에게 공표할 의무도 없다. 제27조에 ‘노동조합은 행정관청이 요구하는 경우에는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은 있지만, 노조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 실제로 요구하거나 보고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이 장관은 “일부 노동조합은 관련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 재정상황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조합원들 역시 노조의 재정 운영상황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다”며 “정부도 그간 노조 자치라는 이름으로 법에 정해진 서류 비치 확인, 재정 상황 보고 요구 등 필요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전했다.

‘깜깜이 회계’는 노조의 횡령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의 진병준 전 위원장은 노조비 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4월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한 지부장이 조합비 3억7000여만원을 횡령해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회계감사원 자격·조합원 공표 구체화…“시행령으로 가능”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부는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조 회계감사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 방법을 구체화할 방침이다. 또 조합원이 노조의 재정 상황을 관심을 가지고 확인할 수 있게 재정 상황 공표의 방법과 시기를 명시할 방침이다.

자료=고용노동부 제공
그에 앞서 노조가 현행법에 따라 자율적으로 재정 투명성을 점검하고 보완할 수 있도록 지원에도 나설 방침이다. 조합원 수가 많고 재정 규모가 큰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253개소가 대상이다. 노조법 제14조에 따른 서류 비치 및 보존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내년 1월말까지 자율점검을 안내하고, 조치 결과를 보고토록 해 조합원이 재정 운용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고용부는 법령 개정의 시행령 수준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여소야대 국회의 문턱을 넘아야 하는 부담이 없다는 뜻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회계감사원이 어떤 독립성과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공표 방법은 무엇인지 시행령 이하에서 구체화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노조 재정 투명성 관련 현행법 외 시행령으로 담을 수 없지만,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는 법 개정의 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판 ‘랜드럼-그리핀법’되나…“독립성·전문성·투명성 확보해야”

고용부의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 방안이 한국판 ‘랜드럼-그리핀법’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1959년 제정된 미국의 노사 정보 보고 및 공개법인 랜드럼-그리핀법은 노조의 회계 내용을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담고 있다. 노조는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하고, 회계 내용을 보고하는 연차회계보고서를 노동부 장관에 제출해야 한다. 회계와 관련해 제3자 독립 감사에 관한 강제 규정은 없지만, 노동부 장관이 위법을 확인할 경우 관리 감독을 직접 할 수 있도록 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랜드럼-그리핀법과 닮은 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노조 회계 감사자 자격요건을 법적 자격 보유자로 명시하고 회계담당은 감사업무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300인 이상 대규모 노조는 회계자료를 매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노조원이 열람 가능한 회계자료 목록을 예산서·결산서 등으로 구체화하도록 했다.

이 장관은 “재정투명성 강화와 부조리·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안이 여러 의원들로부터 발의된 바 있다”며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에 의해서 자기규율통제, 투명성 이런 것들이 요구된다는 점에서는 의원들의 발의된 내용들도 비슷하다고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외국의 법과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노조 재정 투명성 관련해서는 적어도 3가지 기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회계 감사는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 노조가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엔 전문성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 그리고 조합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노조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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