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근거로 자신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고소인 신분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이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한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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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는 정씨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째 딸인 최순실씨와 결혼하면서 이어진다. 최씨는 어렸을 적 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잘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때 입법보조원으로 참여해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회창 총재와 각을 세우며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활발히 활동하던 정씨가 돌연 자취를 감춘 시기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복당한 2004년. 이후 10여년간 정치권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안줏거리로 회자됐고 언론에도 간간이 이름이 나왔지만 그것뿐이었다.
정씨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올 3월 시사저널이 정씨가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을 미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시사저널은 4월에는 정씨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했고 그의 딸이 아시안게임 승마대표로 특혜 선발됐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 매체를 고소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에서 작성한 ‘감찰보고서’ 내용이 세계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정씨는 모든 신문의 머리기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정씨가 이재만·정호성·안봉근씨 등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주기적으로 만나 내부 현안을 보고받고 인사까지 논의했다는 것이다. 이 문건에서 정씨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설을 살포한 인물로도 묘사됐다.
‘정윤회 문건’의 여파는 컸다. 문고리 3인방과의 다툼으로 물러났다는 조응천 전 공직기관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에 대한 소문은 ‘진실’처럼 굳어지게 됐다. 잠행했던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은 연일 언론을 통한 진실공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은) 찌라시일 뿐”이라며 수차례에 걸쳐 파문을 잠재우려 했지만 오히려 후폭풍은 더 커졌다.
어찌됐든 정씨는 이날 검찰에 출석하면서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국정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정씨가 ‘불장난’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겨냥한 인물들은 대척점에 섰던 박지만 회장,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등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