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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불장난 누가 했나"..세상앞에 첫 등장한 정윤회

이준기 기자I 2014.12.10 15:31:02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10일 오전 9시48분 서울중앙지검. 푸른색 넥타이에 카키색 뿔테 안경을 쓴 정장차림의 호남형 인물이 변호사를 대동한 채 담담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가 포토라인에 서자 수백 대의 카메라 셔터 소리는 쉬지 않고 울려댔다. 베일에 쌓여있던 현 정권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59)씨가 세상 앞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정씨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근거로 자신의 국정개입 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고소인 신분이자 새정치민주연합이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하며 고발한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이기 때문이다.

국정개입과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있는 정윤회 씨가 10일 오전 고소인 겸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대로 정치권을 넘어 ‘국가를 뒤흔든’ 문건 파동의 핵심 당사자인 정씨의 삶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알려진 정씨는 원래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이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폐지된 보안승무원은 건장한 체력에 호남형 외모를 가진 남자들을 주로 선발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는 정씨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째 딸인 최순실씨와 결혼하면서 이어진다. 최씨는 어렸을 적 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잘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때 입법보조원으로 참여해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회창 총재와 각을 세우며 2002년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활발히 활동하던 정씨가 돌연 자취를 감춘 시기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복당한 2004년. 이후 10여년간 정치권에서는 그의 이야기가 안줏거리로 회자됐고 언론에도 간간이 이름이 나왔지만 그것뿐이었다.

정씨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올 3월 시사저널이 정씨가 박 대통령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을 미행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시사저널은 4월에는 정씨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했고 그의 딸이 아시안게임 승마대표로 특혜 선발됐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씨는 이 매체를 고소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2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에서 작성한 ‘감찰보고서’ 내용이 세계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정씨는 모든 신문의 머리기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정씨가 이재만·정호성·안봉근씨 등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과 주기적으로 만나 내부 현안을 보고받고 인사까지 논의했다는 것이다. 이 문건에서 정씨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교체설을 살포한 인물로도 묘사됐다.

‘정윤회 문건’의 여파는 컸다. 문고리 3인방과의 다툼으로 물러났다는 조응천 전 공직기관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에 대한 소문은 ‘진실’처럼 굳어지게 됐다. 잠행했던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은 연일 언론을 통한 진실공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은) 찌라시일 뿐”이라며 수차례에 걸쳐 파문을 잠재우려 했지만 오히려 후폭풍은 더 커졌다.

어찌됐든 정씨는 이날 검찰에 출석하면서 “이런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국정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박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다”고 답했다. 정씨가 ‘불장난’이라는 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겨냥한 인물들은 대척점에 섰던 박지만 회장, 조 전 비서관, 박 경정 등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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