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원의 촉]실리적 지지로 바뀐 호남, 이재명 이낙연 중 누구 지지할까

선상원 기자I 2021.07.26 14:00:25

이 지사 백제 발언 놓고 지역주의 공방, 지역주의 망령 등장
지역주의 논란 민심 흔들어, 70만명 권리당원 표심에도 영향
이 지사-이 전 대표 호남 지지율 팽팽, 호남민심 변화에 기인
노무현 문재인 거치면서 배타적 지지 사라져, 실리 따져 지지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이낙연 전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지난 5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백제 발언을 놓고 지역주의 논란이 뜨겁다. 당장 이낙연 전 대표측은 호남후보 불가론으로 규정하며 연일 공세를 벌이고 있고 이 지사측도 백제 단어 하나로 발언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며 캠프 관계자 문책과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역주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야 정치권 모두 지역주의 극복과 영호남 화합 등을 얘기하지만, 선거가 치러지면 지역주의 망령이 부활한다. 총선 때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소지역주의로 당락이 갈리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물론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정치인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서울 종로 선거구를 뒤로 하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무모한 시도라고 했지만,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 후보가 됐고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꺾었다.

호남지역 적합도 33% 대 31%로 좁혀져, 양측 호남 찾아

이번 대선에도 민심을 흔들 수 있는 지역주의 논란이 민주당을 강타하고 있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70만명의 절반이 호남에 몰려있어 호남 유권자들의 선택이 승부를 결정한다. 노 전 대통령이 그랬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017년 대선 경선 때 호남에서 이기면서 일찌감치 후보를 확정 지었다. 이번 경선도 호남의 지지를 얻는 후보가 본선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

여권 대선후보 적합도 1·2위를 달리는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호남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이유이다. 한국리서치와 케이스탯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이 지사는 27%였고 이 전 대표는 14%에 달했다. 호남지역 적합도는 각각 33%, 3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달초만 하더라도 각각 41%, 17%였던 호남지역 적합도가 크게 좁혀진 것이다. 이때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전체 적합도는 각각 27%, 9%였다. 이번 조사는 100% 무선전화면접조사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다. 더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다급해진 이 지사는 지난 주말 호남을 찾아 건물 붕괴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한 뒤 지역 언론사들과 기자간담회를 했다. 이 지사는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호남이 받쳐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 전 대표도 26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아 문화·복지 공약을 발표한다. 아동센터 종사자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인도 만날 예정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15일부터 나흘간 전남 목포와 전북 군산 등 호남 곳곳을 누비며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행보를 벌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경선이 연기된 만큼, 호남 유권자들이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를 끝까지 저울질할 것이다. 호남 출신인 이 전 대표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전략적 선택을 하겠지만 지금은 조기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24일 오후 전북 김제시 금산사에 마련된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 대종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호남, 2016년 총선 때 민주당 심판… 90% 호남 몰표 사라져

정치권에서는 팽팽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을 두고 아직 호남이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일면 타당한 해석이지만, 호남 민심 근저에 흐르고 있는 변화를 놓치고 있다.

지난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가 돼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당돼고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9월 기자들과 만나 “호남사람들이 이회창 후보가 싫어서 나를 찍은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대선 패배 후 절치부심한 민주당과 친노세력의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지난 2011년말 통합해 민주통합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문재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나 영남 출신인 문 후보의 광주 방문을 ‘호남 상륙작전’으로 표현해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후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 친노 주류의 대표주자로 나선 문 후보는 ‘호남홀대론’을 설파했던 박지원 후보에게 3.52%포인트 차이로 신승했으나 새정치민주연합은 계속 내홍에 시달리다 비노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당됐다.

결국 민주당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호남지역에서 거의 전멸했고 국민의당이 그 자리를 꿰찼다. 문 전 대표는 광주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뒤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를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으나 싸늘하게 돌아선 호남 민심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17년 대선 때 선택이 바뀌었다. 호남 유권자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당선 가능성이 높은 문 후보에게 60%를 넘는 지지를 보내 대통령을 만들었다. 30% 가까이 득표했던 안철수 후보의 가능성이 더 높았다면 호남 민심은 그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쏟아졌던 90% 몰표가 사라진 것이다. 배타적 지지가 아닌 실리적 지지로 바뀌었고 실리를 따져 언제든지 지지를 철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더 이상 호남 유권자 입장에서는 호남후보 불가론도, 영남후보 플러스론도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아니다. 호남에게 어떤 후보가 유리한지, 야권후보를 이길 경쟁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양측의 호남구애 전략을 보고 실리적으로 따질 것이다. 한쪽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아 결선까지 끌고 가서 야권후보들을 보고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광주지역 민주당 인사는 “이 전 대표가 호남 출신인데, 너무 지역에서 홀대한 게 아니냐. 지지율이 있어야 체면이 서는 것 아니냐는 정서가 있다. 그래야 경선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며 “실제 경선 투표를 하게 되면 또 달라질 것이다. 누가 더 야당 후보를 이길 확장성이 있는지를 보고 판단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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