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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풀리니 슬슬 나오는 전동킥보드…'헬게이트' 또 열릴라

이용성 기자I 2021.03.17 11:00:00

오는 5월 13일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무면허 운전·안전모 착용 등 규정 강화
불법 속도 개조·난폭운전은 처벌 규정 없어
전문가 "아직 갈 길 멀어" 쓴소리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작년부터 본격 대중화된 전동킥보드는 자동차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까지 위협하며 ‘도로 위 무법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찻길로 갑자기 돌진하는 야생동물 고라니를 빗대 ‘킥라니(전동킥보드+고라니)’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전동킥보드 사고가 잇따르자 관련 규제를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이 지난해 두 번이나 이뤄졌지만 아직도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속도 제한 규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며 난폭운전을 하더라도 마땅히 제재할 법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와 함께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춘풍이 불고 있지만 슬슬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전동킥보드 때문에 ‘헬게이트(지옥의 문)’가 다시 열릴 조짐이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5월 13일부터 개정안 시행…지자체도 문제 해결 나서

지난해 전동킥보드를 규제하기 위해 만든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졸속 입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 발전을 위해 만 13세 이상은 면허 없이도 전동킥보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작년 6월 9일 공포(그해 12월 10일 시행)됐지만 인명사고를 비롯한 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교통사고는 처음 집계가 시작된 2017년 117건에서 2019년 447건으로 증가했다. 사상자 수 역시 2017년 128명에서 2019년 481명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사고가 나 사망하는 사례도 지난해 잇따랐다.

전동킥보드가 한창 거리를 누비던 작년 6월, 도로교통법 개정안 공포에도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국회는 부랴부랴 ‘땜질 처방’에 나섰다. 이미 기존 개정안 시행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인 2020년 12월 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만 16세 이상·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의 면허 취득자만 전동킥보드를 몰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을 의결했다. 재개정안이, 개정안 시행 하루 전인 9일, 본회의를 통과하는 기형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어쨌든 작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한 전동킥보드 규제 재개정안이 올해 5월 13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재개정안에 따르면 전동킥보드를 2인 이상 탑승하거나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 20만원 이하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국회가 과오를 인정하고 발 빠르게 대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 충실히 법안을 만들었으면 반 년 간격을 두고 여론에 떠밀려 법을 재개정할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는 비난도 컸다. 실제 법 개정과 재개정을 하는 반년 사이 전동킥보드를 타다 사망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만든 법안이 부실하다 보니 지자체는 직접 전동킥보드 보도 운행·불법 주정차 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보행자와 자전거 전동킥보드가 공존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지난 9일 밝혔다. 서울시는 불가피한 보도 주행 시 10㎞/h로 속도를 제한하는 법령과 불법 주정차 시 견인할 수 있는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도 국회나 당국에 요청할 계획이다.

지난 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동킥보드 자전거도로 통행 관련 안전대책 촉구 전국자전거단체협의회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전동킥보드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불법 개조 등 규제 방안 미흡…전문가 “아직 갈 길 멀어”

그러나 전동킥보드 안전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차례 땜질식 법 개정에도 전동킥보드를 제대로 규제할 방안이 아직 미흡하다는 이야기다.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물론 자동차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까지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법안이 난립하는 와중에 봄은 왔고, 다시 위험천만한 ‘킥라니’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이용자가 법정 25㎞/h 속도 제한을 ‘편법’을 통해 직접 풀어도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다. 실제 유튜브에서는 검색 몇 번만 하면 전동킥보드 속도 제한을 푸는 방법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제한 속도인 25㎞/h를 훌쩍 넘는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5월 13일 시행되는 개정안에는 불법 개조 관련 처벌 조항은 담겨 있지 않다. 작년 12월 2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을 살펴 보면 관련 처벌 조항은 현행법상 다른 국회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에 두기로 했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9월 전동킥보드 불법 개조 관련 처벌 조항을 넣어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난폭운전 관련 규제 또한 현재 없다. 현행법에 적시된 도로교통법상 난폭운전은 차도 내 신호·지시 위반, 진로변경, 중앙선 침범·속도 위반 등 행위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전동킥보드에까지 난폭운전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명시돼 있다. 이후 해당 처벌 규정은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차도에서 운행할 수 있는 전동킥보드가 신호를 위반하고 진로 변경을 하거나, 역주행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구멍이 숭숭 뚫린데다 여러 번 고쳐 누더기가 된 ‘전동킥보드 법’ 때문에 길거리는 이미 혼란스럽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전동킥보드가 슬슬 거리로 나오고 있지만 안전 규제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운전자와 보행자는 물론 전동킥보드 이용자의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5월 13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다시 예전 원 위치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전 법안애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고 준비가 하나도 안 돼 있다”며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했으면 그에 걸맞은 새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기존 법에다 끼워 맞추려고 하니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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