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조 놓치면 낭패'…꽉막힌 수에즈 운하에 선박 429척 발동동

이준기 기자I 2021.03.28 17:57:14

쉽지 않은 준설·예인 작업…美해군까지 투입
희망봉 우회하자니…돈 더 들고 해적 위험도
시간당 4억달러 손실…일부 선박 우회로 선택

사진=AFP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대만의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號) 예인 작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수에즈 운하 폐쇄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예인선 11척이 온종일 에버기븐호를 끌어당겼으나 큰 소득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뱃머리 주변에 쌓인 2만톤(t)의 모래를 제거하고 배의 무게를 줄이고자 9000t가량의 평형수를 뺐지만, 에버기븐호의 뱃머리는 약 29m 움직이는 데 그쳤다. 현재로선 해수면이 높아지는 만조 시기인 이번 주말이 예인 성공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의 오사마 라비 청장은 에버기븐호의 부양 시기와 관련, “조류에 대한 선박의 반응에 따라 오늘이나 내일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길이 400m, 폭 59m, 총톤수 22만4000t에 달하는 거대한 몸체에 1만8300여개의 컨테이너 무게까지 감안하면 만조 전까지 준설 작업이 마무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라비 청장은 “다음 주 내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면 컨테이너 600여 개를 옮겨 선박의 하중을 줄일 것”이라며 “수일 더 작업이 지연될 수도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 해군까지 개입에 나섰다. 미 해군 준설작업 전문가들은 이날 현장에 도착해 지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미 CNN방송은 전했다.

현재 429척의 선박들이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 위해 대기중인 상태다. 수에즈 운하로 향하고 있는 배도 100여척에 달한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운하 안팎에서 대기 중인 선박들에 쌓인 화물만 120억달러(약 13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전다. 당장 이번 사태로 중동발(發)·유럽행(行) 석유·가스 수송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기약 없이 발만 동동 굴리는 선박들은 마냥 기다리기도, 우회로를 택하기도 쉽지 않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거나 항공운송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있으나 막대한 운송비용이 문제다다.

홍콩 기반 선사 ‘만다린쉬핑’의 팀 헉슬리 대표는 “에버기븐호에 실린 컨테이너 2만개를 항공 운송하려면 보잉 747 화물기 2500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지적했듯, 아프리카 북동부 해역서 활동하는 해적의 공격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WP는 서아프리카 해역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운송로’라고 적었다.

그럼에도, 에버기븐호 자매선인 에버그리트호는 이번 사태 이후 처음으로 희망봉 우회 항로를 택했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도 선박 4척의 뱃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외신은 이번 사태로 시간당 4억달러(약 4500억원)어치의 물류운송이 지체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유럽·아시아를 오가는 선박이 희망봉 우회로를 택한 건 약 45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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