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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모르는 탁상공론…'근로시간 단축' 허탈한 中企 (종합)

김정유 기자I 2018.02.27 12:25:37

국회 환노위 27일 근로기준법 개정안 의결, 5년만에 타결
중기 "소기업 상대적 박탈감, 비용부담 우려"
중견기업 "300명 이상 기업 유예구간 삭제, 소통 부족"

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최저임금 인상에 이번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치면서 도저히 한국에선 기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네요. 해외로 공장 이전을 위해 최근에 베트남까지 다녀왔습니다.”

27일 경기도 시화·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자동차부품업체 A사의 배모 대표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같이 토로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까지 연이어 진행되는 상황에서 배 대표는 한국에서의 경영의지를 잃은 것.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새벽 근로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40인 안팎의 A사의 경우 개정안에서 명시한 ‘30인 미만’ 사업장의 특별연장근로(8시간) 허용 대상에도 되지 못한다. 어중간한 사업장 규모가 발목을 잡은 셈이다. 배 대표는 “최근 상황이 너무나 갑갑해 국내에선 더이상 대책을 만들긴 어렵다고 생각, 최근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모 산업단지 부지를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며 “이렇게까지 중소기업들을 사지로 몰고 있는데 우리가 굳이 한국에서 사업할 의미가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5년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환노위 문턱을 넘으면서 이처럼 중소기업들의 두려움도 커지는 상황이다. 중소기업계가 줄곧 요구해왔던 30인 미만 기업 대상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된 부분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여전히 갈등 소지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공휴일을 민간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평등한 휴식권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공감하지만, 휴일에도 쉬기 어려운 서비스업 종사자나 인력이 부족한 소기업의 상대적 박탈감과 비용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유감”이라며 “국회는 향후 예정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노동제도 유연화 논의도 성실히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들의 반발은 더 거세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선 현장의 실상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중견기업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국회 합의에 5년이 걸릴 정도로 첨예한 사안인 만큼 환노위 통과만으로 모든 쟁점이 해소된 것으로 마침표를 찍어서는 결코 안된다”며 “특히 2015년 노사정 대타협에 명시된, 성장 가능성 높은 중견기업이 많이 포함된 300명 이상 1000명 이하 근로시간 단축 유예 구간이 삭제됐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해 중견기업계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기 위한 소통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사실상 무제한 근로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는 ‘특례업종’을 현행 26종에서 운송·보건 등 5종으로 줄인 것도 문제로 꼽힌다. 중소기업청장을 역임했던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여력이 되는 대기업이야 근로시간 단축이 가능하겠지만 1주일 내내 공장을 가동해야만 하는 소위 뿌리업종인 단조·주조·열처리 등은 불가능한 구조”라며 “이들 3D(힘들고·더럽고·위험한) 업종은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정부에서 외국인 노동자 쿼터를 늘려주지도 않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취지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근로시간 단축)정책방향으로는 뿌리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베트남 등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며 “업종별, 규모별 특성을 일정 부분 고려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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