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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금융]노드? 클러스터?‥금융권 색다른 조직개편

전선형 기자I 2021.01.07 11:01:09

KB국민은행ㆍ한화생명 등 반도체ㆍIT기업식 조직 개편
빠른 의사결정 위해 중간단계 없애고 소단위 체계 구축
생소한 명칭에 직원도 ‘아리송’...“조직명 바꾼다 혁신인가”

[이데일리 전선형 기자] “HR노드에서 얘기했던 그 사안 말이야. 그거 서포트클러스터에 있는 다른 노드하고 협의가 된 거 맞는 거야?“

IT나 반도체 기업에서나 쓸법한 알쏭달쏭한 조직 용어가 금융권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들이 말로만 디지털 혁신을 외치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조직 체계에 IT 기업의 방식을 적극 이식하기 시작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소규모 조직 통한 ‘빠른 의사소통’ 목표

한화생명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클러스터’와 ‘노드’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다. 노드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통로에 접속되는 하나 이상의 기능 단위를 말하고, 클러스터는 복수의 원자 또는 분자가 모여 있는 집합체를 의미한다. 두 용어 모두 IT나 반도체기업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 일반적인 기업의 조직체계에는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화생명은 생소한 두 단어를 적극 끌어들였다. 노드는 자율책임하에 단위 프로젝트를 사용하는 팀의 이름으로, 클러스터는 상호 연관관계가 깊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본부로 개념으로 설정했다. 기존에 부문-본부-팀 단위 체계였다면, 부문-클러스터-노드가 된 셈이다. 노드의 경우 정규 인사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목표 프로젝트에 따라 자율적으로 모였다가 흩어질 것이라고 한화생명은 설명했다. 두 조직은 전략부문과 신사업부분에 한정돼 사용된다. 전략부분은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SO)인 김동원 전무가 맡고 있다.

KB국민은행도 지난 조직개편을 통해 ‘플랫폼’이란 이름의 조직을 신설했다. 플랫폼의 원래 뜻은 컴퓨터 시스템의 기본이 되는 특정 프로세스나 운영체제를 말하는 IT용어다. 최근엔 다수의 공급자가 수요자가 만나는 유기적인 공간(시장)을 일컫는 말로 더 많이 쓰인다. KB국민은행의 플랫폼 조직은 후자에서 착안했다. 즉, 기획부서와 ITㆍ디지털 부서 직원이 함께 근무하며 유기적인 소통을 하겠다는 의미다.

KB국민은행의 플랫폼 조직(부서)은 총 25개로 현재 8개 사업그룹 내에 배치됐다. 그동안 KB국민은행은 디지털·IT·데이터 등 기능별로 조직이 분리돼 있고, 기획·운영·기술 담당 직원도 흩어져 있어 디지털 전략을 추진할 때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기획팀에서 은행 앱 기능을 바꾸는 작업을 원한다고 할 때 이를 IT와 디지털 팀에 각각 업무를 맡기고, 보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데 이를 사업그룹 내 플랫폼 조직에 맡겨 빠르게 업무처리가 가능토록 한 것이다. KB국민은행은 본부 밑에 있는 ‘단’에도 마이데이터플랫폼단, 리브모바일플랫폼단, 클라우드플랫폼단 등 플랫폼을 새롭게 붙였다.

보수적 문화 금융권...“제도보다 마인드 변화 중요”

그간 금융권에서는 에자일, 혹은 사내 벤처 등을 만들어 ‘이노알파’ 등의 특이한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정식 조직 이름에 IT 용어를 사용한 경우는 처음이다. 그만큼 금융회사들이 ‘디지털 혁신’에 대한 목마름이 크기 때문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의 입에선 은근한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름 바뀐다고 조직이 변하겠냐’는 회의론이다. 금융권은 상위 직급에 복종하는 상명하복식 문화가 남아 있고, 정량적 평가로 구성된 핵심평가지표(KPI) 등이 보편화 돼 있어 기존의 ‘틀’을 쉽사리 깨기 어렵다는 것이다. 5년 전 기업들이 ‘반바지 혁신’을 말하며 출근복장에 반바지를 허용해도 서로 눈치보며 유명무실해졌던 것과 비슷한 결과를 끝나지 않겠냐는 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변화의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과거 반바지 혁신 이슈가 불거질 때도 ‘반바지 입는다고 혁신이 되겠느냐’는 반론도 많았다”며 “제도 자체보다는 리더와 구성원의 마인드가 바뀌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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