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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군부대 등서 가습기살균제 5천여개 구입 확인…가정 外 피해 가능성

정병묵 기자I 2020.12.10 11:02:11

사참위, 공공기관 가습기살균제 4668개 구매내역 확인
정부 사용·출시 자제 권고 이후에도 구매한 기관 있어
지자체·건보·카드사 통해 노출 피해규모 파악 나서야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규모 파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어린이집·요양원·공공기관·군부대·사기업 등 ‘가정 외(外)’ 기관에서 5000여개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습기살균제를 집 안에서 사용한 것보다 피해 정도가 적을 수 있지만 법인·기관·단체의 추가 피해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가습기살균제참사 진상규명 소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 2010~2011년 어린이집·공공기관 등에서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내역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3419번에 걸쳐 총 4668개의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했다. 또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메트로, 도시철도공사, 국방부 등 8곳에서 가습기살균제 232개를 구매한 이력을 확인했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공
사참위는 조사된 법인·기관·단체 중 연락처가 확보된 1232곳에 가습기살균제 사용사실을 통보했고, 이 중 98곳은 노출자로 추정되는 사람 6011명에게 문자 및 메일 등으로 피해가능성을 알렸다. 사참위는 이 과정을 통해 복지시설에서 급성심부전으로 사망한 의심사례, 요양원에 중풍으로 입원한 환자 중 급성폐렴으로 사망한 의심사례, 밤샘 작업 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이후 호흡기능 저하 판정을 받았다는 의심사례 등을 확인했다.

법인·기관 총 4668개, 공공조달 통해 232개 구매

법인·기관·단체가 법인카드로 이마트(139480)에서 구매한 가습기살균제는 3개 제품(총 4668개)이다. 해당 제품은 △옥시레킷벤키지가 제조·판매한 ‘가습기당번’(550ml·고체형·싹싹·라벤더향) 2284개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1000ml·솔잎향) 576개 △SK케미칼(285130)이 원료를 공급하고 애경산업(018250)이 제조, 이마트가 판매한 ‘이마트가습기살균제’(1000ml·500ml) 559개이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 8월 사이 가습기살균제를 법인카드로 구매한 법인·기관·단체 중 17곳에서 총 10개 이상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A은행(안성점)은 한 번에 30개를 구매했고, B대학교 서울캠퍼스는 20회에 걸쳐 총 38개를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영유아, 노인, 환자 등 취약계층이 주로 생활하는 곳(어린이집 2곳, 학교 3곳, 병원 1곳, 요양원 1곳, 보건소 1곳)에서도 가습기살균제를 10개 이상 구입한 내역이 확인됐다. C어린이집은 4회 11개, D외국인유치원은 4회 14개, E병원은 2회 27개, F보건소는 2회 11개, G전문요양원은 1회 13개 등의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참위는 현재 운영 중인 29개 공공기관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이력(2002~2011)을 전수 조사한 결과 △조달청 ‘나라장터’(166개) △방위사업청 ‘국방전자조달’(73개) △한국전력공사 ‘한국전력공사 전자조달시스템(13개)’로 3개 운영기관을 통해 총 232개의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공공기관 8곳을 확인했다. 이 중 서울메트로는 나라장터를 통해 옥시 가습기당번을 127개 구입해 본사 신호관제사무실 및 침실에서 사용했고, 국방부는 가습기세정제 아토세이프 43개,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 29개를 구입해 사무실 등에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2011년 8월 31일 가습기살균제 출시·사용 자제 권고를 내렸음에도 서울메트로는 2011년 9월 옥시 가습기살균제 20개를 구매계약을 체결했고, 육군군사사령부 역시 2011년 9월 가습기메이트 20개 구매예약을 체결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국방부 국군지휘통신사령부는 2011년 11월 4일 질병관리본부의 동물흡입실험에 따른 가습기살균제 사용중단 강력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인 2011년 11월 8일에 아토세이프 3개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 60대대(B1체계운용반, B2체계운용반서버실 추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가습기살균제 사용·출시 자제 권고, 사용중단 강력권고를 공공기관마저도 지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피해 인지 힘들고 입증 어려워…피해자 다각적으로 찾아야”

가정 내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본인 및 가족이 직접 구매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스스로 피해사실 확인 및 증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정 외 피해는 노출이 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피해를 입었더라도 입증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피해 조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조사는 사참위가 2010년 10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약 11개월간 대형마트 한 곳(이마트)에서만 판매된 3종류의 제품(옥시 가습기당번, 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판매내역 약 10만개에 대한 것으로 가습기살균제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8년 동안 48종류의 제품 약 1000만개가 팔린 것에 비하면 1%에 불과하다.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한 법인·기관·단체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가능성도 확인된 만큼 사참위는 향후 정부, 지자체 등과의 협조를 통해 가정 외 가습기살균제 피해 규모 파악과 안내를 보다 면밀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사참위가 설문조사가 아닌 대형마트와 카드사를 직접 조사해 대규모의 가습기살균제 구매내역을 확인하고, 가정 외 가습기살균제 구매 및 사용을 확인한 첫 사례”라며 “정부는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록과 카드사의 구매이력 등을 활용해 가정 외 가습기살균제 노출 가능성뿐만 아니라 피해 질환의 유형까지 확인, 더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피해자 찾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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