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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쫓는 한동훈…“서울 성범죄자 99%, 지방으로 보낸다?”

이선영 기자I 2023.02.13 13:25:55

‘한국형 제시카법’ 추진 두고 실효성 논란
학교 등 교육시설 500m 이내 성범죄자 주거 제한
사실상 대도시는 성범죄자 거주 불가
423명 중 ‘1명 빼고’ 모두 지방 이사 가야 할 수도
특정지역 쏠림에 갈등·반발 우려

[이데일리 이선영 기자] “법무부는 미국의 ‘제시카법’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서 우리나라의 환경과 현실에 맞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도입하겠습니다. 이 법안은 단순 성범죄자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사냥하듯 성폭행하는 소위 ‘괴물’들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월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법무부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에 참석해 올해 핵심 추진과제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 장관은 “고위험 성범죄자 출소에 따른 국민적 불안감에 깊이 공감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새해 업무보고 내용을 브리핑한 후 ‘한국형 제시카법’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형 제시카법은 학교나 어린이집 등을 보호 대상 시설로 보고 이들 시설 500m 이내에서는 성범죄 전과자가 거주할 수 없도록 주거 제한을 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제도 도입과 시행까지는 여러 암초가 놓여있는 형국이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와 이중처벌이라는 지적 뿐 아니라 조두순, 김근식의 사례처럼 지역간 마찰이 첨예해질 수 있어서다.

법무부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고위험 성범죄자는 학교, 유치원 등 교육시설에서 최대 500m 범위 내에 살 수 없다. 사실상 대도시에서는 살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가운데 법안이 도입되면 서울에 거주 중인 성범죄자들이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할 수도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13일 ‘성범죄자 알림e’ 등에 따르면 현재 신상이 공개된 서울 거주 성범죄자 423명 중 422명(99.8%)이 미성년자 교육 시설 500m 이내에 주소지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거주 제한 거리를 300m 이내로 줄여도 대다수 성범죄자가 거주 제한을 받는다. 미성년자 교육 시설 300m 이내에 거주하는 성범죄자는 403명(93.3%), 100m 이내는 166명(39.2%)인 것으로 조사됐다. 50m 이내 거주자는 51명(12.1%)이다.

서울에서 제시카법을 적용받지 않는 단 1명의 신상정보 대상 성범죄자는 특수강도강간죄로 징역 10년을 살다가 출소한 A씨(43)였다. 그는 현재 비(非)주택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그의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미성년자 교육시설은 636m 떨어진 어린이집이었다.

아직 거주제한 대상과 방식이 구체적으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제시카법 도입과 함께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성범죄자가 미성년자 교육시설이 밀집한 서울을 떠나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으로 옮기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시카법을 두고 서울 거주 성범죄자를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는 ‘서울 보호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안산시여성단체협의회와 선부동 주민 등 60여명은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안산시청 현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두순은 안산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법무부의 제시카법 추진을 바라보는 수도권과 지방 주민 간 시각차는 확연하다. 지방 주민들은 법이 시행되면 서울에 비해 그렇지 않아도 치안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 범죄 위험까지 떠안게 된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대로 수도권 주민들은 법이 시행되면 주거지역이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경북 포항에 사는 김모(57)씨는 1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치안시스템이 잘 갖춰졌지만 시골은 폐쇄회로(CC)TV조차 없는 곳이 많다. 중소도시나 시골의 열악한 사정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또 “지금도 애 낳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이러면 더더욱 아이를 키우기가 어려워질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김수현(27)씨는 “보호해야 하는 아동이 서울에 밀집해 있을 뿐인데, 무작정 ‘서울중심주의’로 보는 시각은 불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고위험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의 원조는 미국 플로리다주 주법이다. 플로리다주에서 2005년 시행 뒤 미국 내 30여개 주에서 도입했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성범죄자의 주거지를 제한하는 데 그칠 뿐 사회로 복귀하기 어렵게 하고 재범률을 낮추는 효과도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제시카법은 만 12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아동 성범죄자에 징역 25년, 캘리포니아주는 만 14세 미만 대상 성범죄자에 최저 징역 15년의 형량 하한선을 명시했다. 이번에 법무부가 발표한 한국형 제시카법은 전자장치부착법을 개정하는 안이어서 형량 상향을 담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예외조항을 둬 미성년자 교육시설 500m 이내라도 성범죄자가 거주할 수 있는 보호시설 설치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성범죄 재발을 막겠다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법안을 다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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