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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앙숙의 결투‥잡음 커질수록 한은에 유리하다

장순원 기자I 2020.12.02 11:01:00

한은-금융위 핀테크 지급결제 놓고 권한다툼
핀테크 육성 묻힐라…금융위 최대한 로우키 전략
한은은 맞불 작전‥여론 악화하면 불리할 거 없다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상 속 깊이 들어온 핀테크 지급결제의 통제권을 누가 쥐느냐를 놓고서다. 핀테크 정책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전자지급결제(페이) 업체를 키우겠다는 생각이다. 핀테크의 영향력이 커질 게 분명한데 지금처럼 느슨한 규제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위의 논리다. 소액결제망을 운영하는 금융결제원을 통해 외부청산을 의무화해 핀테크의 내부거래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디지털금융시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절차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한은은 지급결제는 중앙은행의 고유한 권한이며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관리하던 금결원을 건드리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지급결제 놓고 혈투‥전금법 개정 놓고 폭발

사실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은 역사가 길다. 1998년 출범한 금융위의 전신인 금융감독위원회가 1999년 한은이 산하에 뒀던 은행감독원(은감원)을 통합해 금융감독원을 발족하면서부터다. 한은 입장에서는 독립성을 확보했으나 은감원을 내주면서 사실상 금융기관 감독권을 대부분 상실했다. 이후 두 기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겨루기를 해왔다. 특히 지급결제를 놓고서는 첨예하게 맞서는 경우가 잦았다. 지난 2009년 기획재정위 위원들이 한은법 개정을 통해 한은의 지급결제 감독권을 강화하려 하자 이에 맞서 정무위 위원들은 지급결제감독권을 금융위에 주는 법안을 냈던 게 대표적이다.

지급결제를 바라보는 두 기관의 시각은 출발부터 다르다. 한은은 특히 지급결제시스템의 관리는 중앙은행의 태생적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금융기관이 결제를 제때 이행하지 않으면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뒤에 버티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법 28조에 한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가 지급결제제도의 원활한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관장할 수 있도록 한 게 근거다. 소액 결제망을 운영하는 금결원 역시 큰 틀에서 지급결제시스템의 한 부분인데, 빅테크의 청산을 빌미로 금융위가 이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한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급결제 시스템의 운영이나 안정적 관리는 중앙은행의 업무”라며 “중앙은행의 금융결제 기능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근본적이고 중대한 문제”라며 강하게 반발한 이유다.

금융위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지급결제는 어느 한 기관이 독점하거나 배타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법 81조 1항에는 한은이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해서는 필요한 사항을 결정할 수 있지만, 2항에는 한국은행 외의 자가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운영기관 또는 감독기관에 운영기준 개선 등을 요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한은법 28조 역시 81조의 범위 안에서 관할권을 인정한다. 즉, 한은이 직접 운영하는 거액 결제망(BOK와이어)을 제외한 다른 결제망에 대해서는 한은은 개선요청 정도를 하는 부차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증권과 외환의 결제와 청산은 예탁원을 비롯한 금융위 산하 공공기관이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급결제에 분야에서) 기관마다 가지고 있는 의무와 수단이 달라 금융시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금결원장을 둘러싼 앙금‥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넜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은성수 금융위원장[연합뉴스 제공]
작년 금융결제원장 인사는 안 그래도 생각이 달랐던 두 기관이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 금결원은 1986년 한은의 결제업무를 때 분사한 비영리사단법인이다.

민법상 주무부처인 금융위에 인가권과 사무 감독권이 있다.

한은 입장에서는 일종의 분신처럼 여기는 곳이다. 한은이 사원총회 의장을 맡으며 금결원을 관리운영해왔고 지금까지 결제원장도 모두 한은 출신이 도맡았다. 그런데 작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1급) 출신인 김학수 현 원장이 취임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패였다. 한은은 임형준 부총재보를 금결원장으로 보내려 했다. 하지만, 금결원 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하자 선임 자체를 포기했고 결국 김 원장이 그 자리로 간 것이다. 당시 관료 출신이 내려갔던 한국자금중개 사장과 맞교환했다는 ‘빅딜설’까지 나왔으나 결국 이 자리는 기재부 관료 몫으로 돌아갔다.

한은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퇴직임원을 보낼 자리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던 요직인 금결원장을 빼앗긴 셈이다. 금결원장은 연봉만 4억원이 넘고, 임기가 끝나도 전관예우 차원에서 고문 자리를 보장받는다.

금결원장 인사 이후 노조를 포함한 한은 내부에서 반발이 커지면서 이 총재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고 할 정도다. 이 총재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한은 영역을 건드리지 말라”는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상황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는 로우키‥한은 맞불로 전선확대 전략

두 기관의 물밑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가장 당혹해하는 것은 금융위다. 정부의 국정과제인 핀테크 육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뜻은 묻히는 대신 기관 간 갈등이 부각되고 있어서다.

빅테크의 전자지급거래 청산기관 감독권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한 윤관석 정무위원장은 한은과 연계된 금결원 업무는 금융위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은의 반발을 의식해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적으로 금결원 업무를 명확히 하고, 금결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한은이 1차 책임을 진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이어 “전자금융거래 안정성을 위해 외부청산 시스템을 가져온 게 (지급결제시스템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이 맞는지 살펴보고, 한은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보완장치를 논의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은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감지된다.

하지만 한은은 전금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은 관계자는 “전금법은 원칙적으로 금융위가 지급결제를 관할하고, 부칙에서 한은에 위임하는 것과 같은 결과”라며 “청산제도화는 중앙은행 지급결제와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한은은 당분간 숨 고르기를 통해 전열을 가다듬은 뒤 필요하다면 전선을 더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일종의 맞불작전이다. 한은은 논란이 커져도 불리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여론이 악화한다면 이를 의식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흐지부지될 것으로 봐서다. 한은을 관장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도 든든한 우군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급결제나 청산은 금융시장을 정상적으로 굴러가게끔 하는 정말 중요한 기능이지만 일반 국민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슈”라며 “싸움이 커질수록 두 기관 사이에 영역이나 밥그릇 다툼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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