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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되는 가격인상…묻어가면 '기술', 이용하면 '예술'

전재욱 기자I 2022.02.18 14:42:32

전방위 오른 식료품값 대처방식 업체마다 천차만별
1위 따라가면 무난한데, 급한 2위가 먼저 나서기도
책임 넘기기도 흔하고, 주변 시선적은 금요일 선호
가격 동결해 `경쟁사 인상` 역공하지만 부메랑 조심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식료품 가격이 너나 할 것 없이 오르는 과정에서 제조사의 대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묻어가기와 하소연, 남 탓, 역공에 담긴 이들의 노림수를 짚어봤다.

지난달 9일 경기 고양시 한 대형마트 커피 판매대 모습.(사진=연합뉴스)
18일 외식·식품·유통업계 말을 종합하면 가격 인상의 가장 일반적인 전략은 ‘1등에 묻어가기’다. 커피를 예로 들면, 프랜차이즈와 믹스 각각 1위인 스타벅스와 동서가 지난달 가격 인상을 공표하자 탐앤탐스와 투썸플레이스, 커피빈이 값을 올렸고 네스카페가 동참했다.

우유는 업계 1위 서울우유가 지난해 9월 우윳값 인상을 결정하자 매일유업, 동원F&B, 남양유업, 빙그레, hy, 롯데푸드가 따라갔다. 치킨도 매출 1위 교촌치킨이 지난해 11월 가격 인상을 결정한 이래 bhc(12월)와 굽네치킨(이달)이 값을 올렸다.

이런 전략은 자체로서 소비자 감성에 소구한다. 1위마저 가격을 올릴 만큼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를 담기 때문이다. 아울러 1등 제품보다 먼저 올리면 비싼 가격 탓에 경쟁력이 달리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다만 이런 흐름이 늘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라면을 예로 들면 지난해 라면 4개사 가운데 가격을 가장 먼저 올린 쪽은 2위 오뚜기였다. 오뚜기가 지난해 7월 값을 올리기로 하자 1위인 농심이 뒤이어 동참했다. 이후 삼양식품과 팔도가 따라서 올렸다.

그간 라면업계 불문율과 같았던 ‘농심 먼저’ 공식이 깨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부담을 자처했겠느냐는 분석이 붙었다. 실제로 오뚜기는 당시 값을 13년 만에 올린 것이라서 여타 업체보다 가격 상승 압박이 거셌다.

금요일을 선호하는 현상도 눈에 띈다. 이날은 한 주간에 상대적으로 뉴스 주목도가 떨어지기에 노리는 것이다. 사실 가격 인상은 기업의 이익을 개선하는 긍정적인 요소라서 널리는 알리는 게 맞지만 현실은 다르다. 발표 자체만으로는 소비자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해서 부담이 크다. 소비자 시선이 분산하는 시점을 잡는 것은 부담을 더는 길이다. 해당 업체는 이런 해석을 부인하지만 시장과 경쟁사 시선은 그렇지 않다.

타사의 가격 인상을 자사의 홍보 수단으로 삼는 역공도 흔하다. BBQ는 지난해 12월 언론에 자료를 내어 “뼈를 깎는 고통 있더라도 당분간 가격 인상 없다”고 공언해 호평을 받았다. 통상 가격 인하·인상을 공표하는 것에 비춰 동결 발표는 이례적이다. 교촌치킨(11월)과 bhc(12월)가 가격 인상을 결정한 직후에 대비 효과를 누리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오리온도 지난해 8월 가격 동결을 선언해 소비자 지지를 받았다. 다른 회사는 과자와 빵 값이 오르던 시기였다.

‘가격 동결’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럿이고 환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리는 상황이 되면 과거 발언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여하튼 가격은 자체보다 전달 방식이 중요하다. 식품사에서 홍보 업무를 십수년 담당한 관계자는 “대 여론 업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은 가격 인상을 일반에 공표하는 일”이라고 주저 없이 꼽을 정도다.

이런 이유에서 책임을 상대에게 넘기는 전략은 전통이다. 아이스크림 업계는 우윳값이 오른 탓을, 과자와 라면 업계는 밀가루 값이 오른 탓을 하는 식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제조사가 가격을 올린 탓을 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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