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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 지역을 살리는 문화혁명

e뉴스팀 기자I 2020.12.31 13:02:55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다. 어떻게 가능할까. 오래된 도시를 재생하거나, 전통과 현대, 문화?예술을 결합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 나오시마(直島)와 쿠라시키(倉敷), 완주 소양. 세 곳은 낙후된 지역을 재생하고 미술관을 더해 부가가치를 높였다. 어떻게 하면 문화가 돈이 되고, 지역도 살리는지 보여준 실증 사례다. 소멸위기에 처한 한국과 일본 지방 도시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먼저 일본 나오시마 예술 섬. 인구 3,000명에 불과한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다. 버려진 섬은 예술 기지로 변하고, 사람들이 줄지어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섬에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세계적인 미술가 이우환, 호박 작품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가 뒤섞여 있다. 30여년이 흘러 이제는 매년 50만 명 이상 다녀간다. 베네세 그룹 회장인 후쿠다케 소이치로 덕분이다. 후쿠다케는 1990년부터 나오시마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안도 타다오에게 삭막한 섬 재생을 맡겼다. 안도는 마음껏 섬을 디자인했다. 핵심은 미술이다. 미술관과 호텔이 한 공간에 있는 베네세 하우스, 지중미술관, 이우환 미술관은 그 결과물이다. 주변 섬과 손잡고 국제미술제도 연다. 이제 나오시마는 일본 관광청이 선정한 4대 관광지 중 하나다. 또 세계적인 여행 잡지 트래블러는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세계 7대 명소’로 꼽았다. 후쿠타케의 안목과 안도의 상상력이 나오시마를 보물로 바꿨다.

쿠라시키 미관지구에도 혜안 있는 기업인과 미술가가 있다. 쿠라시키는 인구 47만 명, 에도시대 정취가 물씬 풍긴다. 회벽과 목조 기와지붕, 수로가 어울려 풍광은 빼어나다. 이곳에 매년 400만 명 가까운 이들이 찾는다. 쿠라시키를 특별한 곳으로 만든 것은 풍광보다 오하라미술관이다. 개관한지 90년 된 일본 최초 근대 미술관이다. 소장 작품만 3,500여 점에 달한다. 작품 수준도 인상파부터 일본 근대 회화까지 뛰어나다.

엘 그레코, 모네, 르누아르, 고갱, 피카소, 로댕, 고지마까지 현란하다. 작품이 흘러들어온 사연을 알면 더 놀랍다. 오하라 마구사부로라는 기업인이 있다. 그는 방적공장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했고, 친구이자 화가인 고지마와 함께 1890년부터 작품을 사들였다. 1930년에는 미술관을 열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이 일본 소도시까지 도착한 연유다. 덕분에 오늘날 관광객들은 지방도시에서 뜻하지 않는 호사를 누린다.

끝으로 완주군 소양에 있는 ‘아원고택’. 미술관과 한옥체험관이 공존하는 곳이다. BTS는 지난해 이곳에 일주일여 머물렀다. 이후 아원고택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최근에는 국내 3대 백화점도 이곳을 배경으로 광고를 촬영했다. 삼성 파브TV, CJ, ZARA도 앞서 광고를 찍었다. 다녀간 유명 정치인과 영화인, 문화계 인사도 상당하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한적한 산골에 사람과 돈이 몰릴까.

아원고택은 풍성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현대와 전통, 예술이 공존한다. 진입 부 갤러리는 현대 건축물이다. 이곳에서는 미술 작품 전시, 작은 공연이 벌어진다. 갤러리를 지나면 새 세상이 열리듯 대나무 숲길과 전통 한옥이 나타난다. 안채는 경남 진주에서 250년 된 한옥을 옮겨왔다. 드라마 발효 가족 세트장으로 사용된 한옥체험관도 70년 된 한옥을 뜯어왔다. 이야기가 넘치는 이곳 마루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면 모든 시름을 잊는다.

아원고택과 짝을 이루는 오스갤러리. 이곳도 BTS가 다녀갔다. 사용된 건축자재는 모두 재활용했다. 붉은 외벽은 서울 화신백화점 철거 과정에서 나온 벽돌이다. 기둥과 상량은 전주초등학교에서 나온 100년 된 고재다. 전해갑 대표는 “트렌드는 따라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한옥은 최고 문화자산이다. 아원은 현대 건축물 위에 한옥, 장독대, 담장, 돌담, 대숲, 연못을 더했다. 또한 오스갤러리에도 풍부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나오시마 예술 섬과 쿠라시키 오하라미술관, 완주 아원고택. 모두 예술과 전통, 현대가 접목된 결과다. 여기에 안목과 혜안을 지닌 기업인과 문화 디렉터가 창의력을 보탰다. 파괴보다는 재생, 대립보다는 공존의 지혜다. 새해에는 사람도 모으고, 지역도 살리는 문화혁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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