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폐기물 2년 뒤면 둘 곳 없는데…저장고 건설 '하세월'

김일중 기자I 2018.01.16 11:37:35
[이데일리 김일중 기자]경주와 포항에서 있었던 두 차례 지진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정, 문재인 정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과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발표 등을 거치며 환경시민단체와 원자력업계 사이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벌어졌던 원자력발전 찬반 논란이 국민들에게도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좋아해야할지 한탄해야할지… ‘웃픈 현실’


탈원전에 찬성하는 측은 “우리나라 원전은 지진에 취약하며 해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신재생에너지에 비해 결코 값이 싼 전력원이 아니다”라며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및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과 함께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탈원전 정책을 펴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탈원전은 전력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을 진행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는 원전이 여전히 가장 적합한 발전원이며 오히려 지진에도 끄떡없던 모습은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측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이라 일반 여론도 양쪽으로 갈려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발등의 불’로 다가왔음에도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다. 바로 2020년 6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 월성원전 1~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문제다.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늦는다…


△역사

월성원전 1호기는 679㎿급 용량으로 캐나다에서 개발한 ‘가압 중수로형 원자로’(CANDU)를 채택해 1975년 5월 3일에 기초굴착 공사를 착공해 6년 후인 1983년 4월 22일에 준공,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각각 700㎿급 용량을 가진 월성 2·3·4호기는 1990년대 후반 안정적 전력공급을 목적으로 1997년~1999년 사이에 준공돼 상업운전을 개시했다. 가압중수로형 원전기술 자립 기반을 구축하기 위하여 엔지니어링 및 설계 업무를 캐나다원자력공사와 공동 수행해 기술습득을 극대화했다.

월성 1~4호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압 중수로형 원자로를 사용하는 유일한 원자력 발전소이다.

얘네들이 월성 1(왼쪽부터)·2·3·4호기.(사진=한국수력원자력)


△능력

월성원전 1~4호기는 2012년과 2015년에 준공한 신월성 1·2호기(1000㎿급)와 함께 한국수력원자력 월성본부를 구성하고 있다.

월성본부의 설비용량은 4758㎿로 총 발전원 대비 4.5%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총 발전량은 317억kwh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총 발전량 5288억kwh의 6%에 해당하며 국내 원자력 발전량(1622억kwh)의 20%를 차지한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전력소비량의 53%를 감당하는 규모이다.

△위기

월성본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수로와 경수로 원전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월성을 제외한 다른 원전의 경우에는 전기 생산에 사용하고 난 사용후핵연료를 ‘습식저장조’라고 불리는 수조 안에서 임시 저장하고 있다.

월성본부는 중수로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습식저장조에서 약 6년간 보관하며 열을 식힌 뒤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저장한다. 6년간 열을 식힌 연료는 방사능 수치가 800분의 1로 줄어들어 관리하기에도 훨씬 용이하다.

건식저장시설은 ‘캐니스터’와 ‘맥스터’, 두 가지가 있다.

월성 1호기 뒤편 언덕에 위치한 캐니스터는 높이 6.5m, 둘레 3.1m의 하얗고 둥그런 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겼다”…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캐니스터’.(사진=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 차폐 금속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아 1m 두께의 콘크리트 외벽으로 둘러싼 것으로 1기마다 540다발씩 총 300기에 16만 2000다발을 담고 있다. 1992년 4월 최초 저장을 시작한 이후 2010년 4월 이미 100% 저장이 완료된 상태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넣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맥스터’이다.

오늘의 주인공 ‘맥스터’(조밀 건식저장시설).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조밀건식 저장모듈로 불리는 맥스터는 창고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원통형 저장용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은 것으로, 통풍구 안쪽을 지그재그 형태로 설계해 캐니스터보다 2.7배 더 많이 보관할 수 있다.

월성본부는 현재 7기의 맥스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총 저장용량은 16만 8000다발이다. 하지만 2010년 10월 첫 저장을 시작한 이후 2017년 10월 말 기준으로 14만 7480다발이 저장돼 저장률이 87.8%에 달한다. 한수원은 이 추세라면 2020년 6월이면 더 이상 저장할 공간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현황이란다. 턱밑까지 꽉 찼다. (출처=한국수력원자력)


△시간

한수원은 월성본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8년치 16만 8000다발을 저장할 수 있는 맥스터 7기 추가 건설을 추진 중이다. 포화 예상 시기인 2020년 6월 이전에 저장시설을 갖추려면 24개월의 공사기간을 감안해 늦어도 올해 6월에는 착공에 들어가야 하는 촉박한 상황이다.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모습은 지지부진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허가단계에서 진전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원안위는 맥스터 추가 건설이 과연 안전한가만 집중적으로 심사하고 허가여부를 판단한다”며 “2017년 7월 한수원에 4차 질의서를 보냈으나 아직 답변이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답변서가 와야 추가 질의나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싹 몸이 단 것으로 알려진 한수원이 늑장을 부린 것일까?

이에 대해 한수원은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지진으로 모든 원전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다시 진행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 답변서 작성이 늦어졌다”며 “최대한 서둘러 1월 말 또는 늦어도 2월까지는 답변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재공론화 방침도 맥스터 추가 건설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이유다.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박근혜정부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2015년 월성본부에 맥스터 7기를 추가 건설하겠다고 확정한 것을 다시 공론화해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출범시킬 계획이었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비하고는 있지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안전성과 주민들 수용성 확보 등을 어떻게 검증할지 고민 중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론화위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고민 중”이라며 “출범시기와 일정 등 구체적인 진행상황은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공론화위가 뒤늦게 출범해 추가건설을 확정한다 해도 논의 기간과 사전준비 등을 고려하면 올해 상반기 내 착공이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공론화 결과가 건설 백지화로 나타난다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없는 월성원전은 2년 뒤 저절로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대안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탈원전을 추진 중인 정부가 월성 1~4호기의 조기 폐로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수조원의 비용이 투입된 기존 원전의 경우 만약 조기 폐로가 된다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다. 최소한 설계수명 만큼 가동을 보장하며 자연스럽게 탈원전을 이루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건설도 이런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성 1호기는 2022년 11월까지 10년간 수명이 연장된 상태이고 2·3·4호기의 설계수명은 각각 2026년, 2027년, 2029년에 만료된다.

원전을 계속 운영하건 탈원전을 하건 사용후핵연료 저장과 처리는 수십 년 미래세대에게도 부담이 될 문제다. 어쩌면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는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건설 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솔로몬이 필요해. (사진=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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