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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망명족과 기상청의 태풍 `바비` 예상진로 이래서 달랐다

최정훈 기자I 2020.08.26 11:01:30

기상망명족이 의지하는 ‘윈디’의 예측 모델, 기상청과 달라
윈디, 세계 1위 유럽중기모델 이용…기상청은 영국·한국형 모델
“윈디 모델도 예보 참고…예보관이 최종 판단해 책임까지 진다”
‘오보청’ 불명예, 태풍철·한파 등 정확한 예보로 씻어내야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제8호 태풍 ‘바비’가 초속 50m 정도의 강한 바람을 동반하며 한반도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비는 오늘 밤부터 제주 남쪽에서부터 서해를 거쳐 서울에 근접한 뒤 황해도에 상륙할 전망이라고 기상청은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풍의 진로가 발표됐을 때 기상청의 예보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툭하면 빗나가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지 못해 노르웨이나 체코 등 해외 기상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른바 ‘기상망명족’입니다. 이들은 체코의 기상 앱 ‘윈디’가 태풍의 상륙 장소를 평안북도 정주시나 중국 단둥시로 예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윈디는 왜 우리나라 기상청과 다른 예측을 했고, 기상망명족의 불신은 왜 이렇게 클까요?

체코 민간 기상업체 ‘윈디’(Windy)가 예상한 27일 오전 11시쯤 태풍 위치(홈페이지 캡쳐)
기상망명족이 의지하는 ‘윈디’의 예측 모델, 기상청과 달라

윈디와 우리 기상청 예보에 차이가 발생했던 이유는 사용하는 기상 예측모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상청이 사용하는 수치 모델은 영국 기상청의 모델(UM)과 지난 4월 도입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입니다. 반면 윈디가 사용하는 수치모델은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의 예보모델입니다.

유럽중기 모델은 가장 우수, UM 모델은 두 번째로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지만 성능의 차이가 큰 편은 아닙니다. 세계기상기구 평가에 따르면 유럽중기 모델은 100점 만점에 85점, UM은 84점입니다. 기상청은 지난 1997년부터 일본 기상청 모델(GSM)을 사용하다 2010년에 UM으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유럽 중기 모델은 유럽연합 회원국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KIM도 우리나라 날씨를 예측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KIM은 2011년부터 10년에 걸쳐 946억원을 들여 개발한 국산 수치예보 모델입니다. KIM이 필요한 이유는 UM도 세계 2위의 우수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동아시아지역 예측력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입니다. 이에 UM 자료를 우리나라나 동아시아 기후변화 상황에 맞게 고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KIM은 성능 평가도 82점으로 우수한 편이고 우리나라라는 국지적인 영역만 볼 때는 유럽 중기 모델이나 UM보다 성능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자료=기상청 제공
윈디 모델도 예보 참고…예보관이 최종 판단해 책임까지 진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기상청에서 UM과 KIM만을 가지고 기상을 예측하는 것도 아닙니다. 유럽 중기 모델이나 일본 모델 등도 참고하게 됩니다. 여기서 윈디와 가장 큰 차이점이 또 있습니다. 윈디는 단순히 예측모델의 결과만을 보여준다면, 기상청은 여러 모델의 결과를 바탕으로 예보관이 최종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있지만 날씨 예보에 책임을 지기 위한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홍수 등 자연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인 예보가 틀리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보가 크게 틀리면 기상청은 국회와 감사원으로부터 점검도 받아야 합니다. 반면 윈디와 같은 외국 기상 예보는 만일 틀리더라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도 지난 24일 브리핑에서 “(ECMWF 등) 외국의 모델 중 어떤 게 정확한 경로인지 판단하긴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KIM이나 UM과 함께 기타 국가의 모든 수치모델 등도 고려해 현재 중심기압의 실황을 분석한 뒤 최적화된 경로를 예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많은 모델을 참고하고 예보관의 책임있는 판단까지 더해져 날씨예보가 나오지만 기상망명족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특히 올 여름에는 빗나간 예보에 대한 비판이 거셌습니다. 애초 기상청은 지난 5월 작년보다 기온도 높고 폭염일수도 많을 것이라 전망했지만 7월 들어 비가 잦아지고, 집중호우가 시작되면서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자 최근 예측이 빗나갔다고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근 집중호우와 장마 시기엔 강수량을 과소평가하는 예보를 내렸다가 피해가 커지자 집중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기상청은 세계적인 이상 기후 현상을 오보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최근 이례적으로 긴 장마는 현재 과학 기술로는 예측하기 힘든 이른바 ‘블로킹’ 현상이 원인이었습니다.이번 집중호우엔 중국과 일본 기상청도 강수량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고 러시아에서도 기상청의 오보로 대규모 관광업체들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비판이 쏟아지기도 하는 등 오보가 우리 기상청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도 예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오보라고 판단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 좁은 지역에 단기간 많은 비를 뿌리는 경우에 강수를 예보하기도 하는데, 그 지역을 벗어나 있는 사람 입장에선 ‘오보’라고 받아들인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쨌든날씨 예보와 관련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며 ‘오보청’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태풍 ‘바비’에 이어 9월부터 10월사이 발생할 가을 태풍철, 겨울 한파 등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 기상청은 긴장하고 있을 듯 합니다.

제8호 태풍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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