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베이조스 등 美 갑부들, 수백조 벌고도 쥐꼬리 세금 냈다

김보겸 기자I 2021.06.09 11:29:24

美부호 25명 2014~2018년 소득세율 중산층보다 낮아
美중산층, 소득의 14% 세금으로 냈는데…
베이조스 1%·머스크 3% 등 억만장자는 찔끔 납세
주가·부동산 올라도 '현금화' 안하면 과세대상 제외 탓
바이든 행정부, '부자 증세' 추진 탄력받나

지난달 미 워싱턴DC 한 전광판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의 얼굴과 함께 “세금 매길 수 있으면 해 봐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모습(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세계 1·2위 부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슈퍼 리치’들이 평범한 미국인들보다도 소득세를 적은 비율로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진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기 전까지는 과세 대상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조세제도가 부유층에게만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미국 과세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미 연방국세청(IRS) 납세 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 최상위 부자 25명의 자산가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4010억달러(약 447조원) 늘어난 반면 연방소득세로 납부한 세액은 136억달러(약 15조원)에 그쳤다.

상위 25명 부자들에게 적용된 실제 세율은 3.4%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약 7만달러(약 7810만원)를 버는 미 중산층 가정이 소득의 14%를 연방정부에 납부하는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다.

지난달 17일 미국 워싱턴DC 한 전광판에 일론 머스크 얼굴과 함께 “세금 매길 수 있으면 해 봐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모습. 지난해 12월 머스크는 절세를 위해 캘리포니아주에서 텍사스로 이사했다(사진=AFP)
베이조스 1%, 머스크 3%, 버핏 0.1%

세계 최고 부호인 베이조스 CEO는 2014~2018년 자산을 약 110조원 불렸지만 같은 기간 낸 연방소득세는 이 중 1%도 되지 않는 약 1조원에 그쳤다. 세금을 매길수 있는 소득이 약 5조원에 불과한 탓이다. 2007년에도 회사 주가가 두 배로 뛰었지만 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머스크 CEO 역시 같은 기간 자산을 약 16조원 불렸지만 납부한 세금은 자산 증가분의 3.27%에 해당하는 약 5000억원에 그쳤다. 소득 신고가 약 1조6960억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8년에는 한 푼의 연방소득세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 창업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연방소득세 납부 실적은 자산 증가액 대비 1.3%에 머물렀다.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2016~2018년 3년 연속 투자 손실을 봤다며 연방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5년간 자산이 약 27조원 늘었지만 실제로 낸 세금은 자산 증가액의 0.1%인 264억원이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을 이끄는 칼 아이칸도 대출 이자 납부에 따른 세금 공제로 2016~2017년 연방 세금을 피했다. 아이칸은 세금을 줄일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하며 “‘소득세’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가 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소득이 없다면 세금을 안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부자 증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사진=AFP)
자본이득보다 근로소득 과세에 치중한 탓

많은 억만장자들이 재산이 늘어났음에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미 과세 제도가 투자수익보다 근로소득에 세금을 매기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 과세 제도 하에서는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 ‘현금화’하지 않으면 과세 소득으로 잡히지 않는다. 즉 회사가 성장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보유 주식을 팔지 않으면 신고해야 할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세금 부담률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이에 미 과세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부의 양극화 해소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며 부자 증세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도 맞닿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1년 이상 보유한 자산에 대한 ‘자본이득’이 100만달러(약 11억원)를 넘는 개인에게는 최고 세율을 현행 20%에서 배 수준인 39.6%로 올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부자들의 주택과 주식, 보트 등 보유자산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엘리자베스 워런 미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의 조세 시스템은 근로소득으로 재산을 불리지 않는 억만장자들을 위해 짜여 있다”며 부자 증세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 프로퍼블리카가 입수한 납세 기록은 미 국세청에서 기밀로 취급하고 있는 자료들이다. 이에 찰스 레티그 미 국세청장은 납세 기록 유출과 관련해 내외부 조사에 착수했으며, 유출자는 기소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납세 관련 자료를 국세청 직원이나 다른 이들이 공개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퍼블리카 측은 관련 자료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판단에서 보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기밀 정보를 승인 없이 공개하는 건 위법 행위”라면서도 이번 보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이나 개인이 공평하게 세금을 내도록 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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