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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가루 나눠라"…유골 소유권 분쟁에 한 대법관이 제안한 해법

한광범 기자I 2023.05.12 12:00:08

아내·두딸 vs 혼외 아들 측 유해 소송서 보충의견으로 해결책 제안
김선수 대법관 "유해 독점은 해결책 아냐…절반씩 나누면 어떤가"
불교 '진신사리'·천주교 '영생체' 언급하며 "사회 수용 가능해"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본처 자녀와 혼외자 간의 유해인도 소송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제사 주재 우선순위를 아들이 아닌 나이 순으로 변경한 가운데, 해당 판결에서 김선수 대법관이 양측에 뼛가루 형태인 유해 분할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김선수 대법관. (사진=이데일리DB)
김 대법관은 지난 1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해인도 사건 판결에서 보충의견을 통해 유해인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양측에 ‘유해 분할’을 통한 화해를 제안했다. 유해가 이미 화장을 통해 뼛가루 형태로 돼 있는 만큼 양측에게 절반씩 분할하면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 사건은 사망한 남성 A씨의 유해를 둘러싼 소송이다. A씨는 아내 B씨와의 사이에서 두 딸을 낳았고, 그 이후 혼인관계 중임에도 다른 여성 C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 A씨가 2017년 사망하자 C씨가 화장을 거쳐 한 납골당에 유해를 봉안했다. 그러자 B씨와 두 딸은 “A씨의 유해를 인도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은 ‘아들에게 제사 주재 우선권이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아들의 친모인 C씨 측의 유해 소유권을 인정했다.

대법, “가장 연장자 자녀가 제사주재 우선권” 판례 변경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일 2심 판결 이후 약 5년 만에 “제사주재 우선권을 아들에게 주는 것은 성별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며 “직계비속 중 남녀, 적서를 불문하고 연장자가 우선권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15년 만에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파기환송심을 거쳐 판결이 확정될 경우 C씨 측은 B씨 측에 유해를 인도해야 한다.

김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해를 소유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원만하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에 관해 생각해 본다”며 “이번 소송은 제사주재자로서 A씨를 기리고 추모할 수 있는 법적·사회적 지위가 있음을 확인받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지위가 반드시 어느 일방에게만 독점적·배타적으로 인정돼야만 하는 것일까”라고 자문했다.

그러면서 “(유해 분할 방안이) 한쪽이 유해를 독점하며 상대편 추모 기회를 박탈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봉안돼 있는 유해는 분할이 가능한 뼛가루 형태이므로 양측이 유해를 절반씩 나눠 각각 보관·관리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추모의 마음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망인과 좋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망인 의사에 반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망인 유골을 나눠 가지고 추모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추념의 방식으로 못 볼 바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교계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세계 여러 곳에 분산해 모셔 신자들이 봉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불교 전파에 기여했다. 예수의 몸과 피를 내 몸으로 맞아들이는 천주교의 영성체 의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쪽만 유해권리 인정돼야 한다는 도그마 깨야”

그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B씨 측과 C씨 측은 A씨를 매개로 맺어진 더욱 특별한 기적과 같은 관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러한 특별한 관계를 아픔과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만 끌어가는 것은 비극”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의 관계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승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A씨를 기리고 추모하는 것은 어느 한쪽에 독점돼야만 할 당위나 필요가 없고, 양쪽이 모두 기리고 추모한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해를 가하거나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며 “제사주재자는 특정한 1인으로 한정돼야만 하고 한쪽에만 유해 권리가 인정돼야 한다는 경직된 도그마를 깨고 유연하게 접근하면 적절한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법관은 “양측이 A씨를 매개로 맺어진 특별한 관계가 선한 인연으로 승화될지 아니면 악한 인연으로 전락될 것인가 결정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며 “추모 법적 지위를 어느 일방에만 인정하는 것과 같은 재판 결과는 패소한 측에게 지나치게 가혹해 결코 최선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히 A씨 자녀들인 두 딸과 아들은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지, 서로에 대한 적대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방을 원망하며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재차 양측의 화해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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