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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사회서 외면받는 여장남자, 뮤지컬 '인기 캐릭터'인 이유는?

장병호 기자I 2020.09.10 11:00:00

드랙퀸, 뮤지컬 트렌드로 재부상
'제이미' '킹키부츠' 등 무대 올라
이색 소재, 긍정적 메시지로 '인기'
"볼거리 아닌 캐릭터로 이해해야"

(디자인=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성정체성을 포함해 어떠한 기준으로도 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법안이다.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입법을 추진 중인 가운데 동성애에 비판적인 기독교, 천주교가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등 갈등이 심화하는 분위기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아직 외면 받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 분위기와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성소수자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드랙퀸’(drag queen, 여장남자) 캐릭터다. 10대 드랙퀸을 내세운 뮤지컬 ‘제이미’가 오는 13일 폐막을 앞두고 막바지 공연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2년여 만에 돌아온 뮤지컬 ‘킹키부츠’가 드랙퀸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여전히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도 무대 위를 향할 때는 완전히 달라지는 분위기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한 장면(사진=CJ ENM).
◇‘헤드윅’부터 ‘제이미’까지…드랙퀸 ‘꾸준한 인기’


“무엇을 상상하든지 난 그 이상이지 / 내가 보여줄 테니 입 다물고 감상해봐 / 이렇게 부드러운 살결 내 몸매 반할 걸 / 나는 자유 나는 욕망 / 난 모순적인 그대 환상.”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인 ‘킹키부츠’의 한 장면. 무대에 첫 등장한 주인공 롤라가 6명의 앤젤들과 함께 대표 넘버 ‘랜드 오브 롤라’를 부르기 시작한다. 7명의 남자 배우들이 작품 속 대표적인 드랙퀸 캐릭터로 변신해 짙은 화장에 아찔한 킬힐을 신고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섹시하다. 노래가 끝나고 객석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박수소리에서 이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드랙퀸은 흔히 ‘여장남자’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드랙’은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문화에서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에 따라 정해진 옷과 행동을 허물고 반대로 표출하는 것을 뜻한다. 드랙퀸은 단순한 여장을 넘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인 셈이다.

뮤지컬에서 드랙퀸 캐릭터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첫 작품은 2005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헤드윅’이다. 실제 성소수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만든 뮤지컬로 동명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조승우, 오만석, 송용진 등 스타 배우들이 극 중 드랙퀸인 헤드윅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초연 이후 팬덤을 양산하며 국내 뮤지컬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 ‘헤드윅’ 과거 공연 중 헤드윅 역 조승우의 공연 장면(사진=쇼노트).
◇유쾌하고 화려한 쇼…10대 드랙퀸 이야기도 등장


드랙퀸 뮤지컬의 인기가 더욱 높아진 것은 2014년이다. 2012년 국내 초연한 ‘라카지’가 재연에 올랐고, 드랙퀸 대표 뮤지컬 ‘프리실라’와 당시로서는 드랙퀸이 등장하는 최신작이었던 ‘킹키부츠’가 연이어 국내에 소개돼 뮤지컬계의 드랙퀸 열풍을 만들어냈다.

대중의 관심은 남자 배우들의 ‘여장’에 쏠렸다. ‘라카지’ 재연에서는 정성화, 김다현, 이지훈이, ‘프리실라’에서는 조성하, 마이클 리, 김호영, 조권 등 총 9명의 배우들이 드랙퀸에 도전했다. 짙은 화장을 하고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변신한 이들의 모습은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킹키부츠’는 드랙퀸 뮤지컬 인기의 정점을 보여줬다. 작품에 등장하는 드랙퀸 캐릭터만 무려 7명. 주인공 롤라와 6명의 앤젤이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2018년 세 번째 시즌공연까지 누적 관객수는 30만여 명. 15㎝ 높이의 굽을 포함해 총 길이 80㎝에 달하는 강렬한 레드 컬러의 하이힐 부츠를 입은 드랙퀸 쇼는 ‘킹키부츠’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초연으로 선보인 ‘제이미’는 이전까지 다룬 적 없는 10대 드랙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드랙퀸을 꿈꾸는 10대 청소년의 성장담을 유쾌하게 그려내 드랙퀸에 대한 보다 넓어진 이해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리실라’에 이어 또 다시 드랙퀸에 도전한 조권을 비롯해 뮤지컬배우 신주협, 그리고 아이돌 가수인 뉴이스트 멤버 렌, 아스트로 멤버 MJ가 주인공 제이미 역에 캐스팅돼 4색 드랙퀸 매력으로 흥행을 이어갔다.

드랙퀸 캐릭터 등장 역대 인기 뮤지컬(디자인=이동훈 기자).
◇이색적 소재로 관심…배우에 집중하는 한계도


이처럼 드랙퀸 뮤지컬이 국내서 사랑받는 이유는 먼저 이색적인 소재라는 점에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뮤지컬에서 일상과는 동떨어진 특별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드랙퀸 뮤지컬은 소재적인 측면에서 이색적이기에 국내 무대에 자주 오른다”고 설명했다.

드랙퀸 특유의 밝고 유쾌한 면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제이미’는 주인공 제이미가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원 교수는 “드랙퀸 뮤지컬이 매력적인 것은 드랙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드랙퀸을 단순한 볼거리로 여기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해외에서는 이들 뮤지컬이 성소수자 관객들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국내서는 특정 배우 팬을 중심으로 작품이 소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공연예술경영 교수는 “우리나라의 드랙퀸 뮤지컬이 해외와 가장 다른 점은 성소수자가 아닌 배우들이 드랙퀸을 연기한다는 것”이라며 “꼭 성소수자가 드랙퀸을 연기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저 배우가 어떻게 드랙퀸을 연기할까’라는 호기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성소수자를 ‘다르다’고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사라져야 한다. 뮤지컬에서도 이들 드랙퀸 캐릭터를 특정 배우의 ‘여장’으로 보지 않고 캐릭터 그 자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 교수는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펀홈’이 국내 무대에 오른 것은 한국 뮤지컬이 이제는 성소수자를 단순한 볼거리로 삼는 것을 넘어 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대변한다”며 “드랙퀸의 캐릭터 그 자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제이미’에서 제이미 역을 맡은 조권(상단 왼쪽부터), 신주협, 렌, MJ의 공연 장면(사진=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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