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개헌 시동거는 日…'전쟁가능국' 되나 촉각

정다슬 기자I 2021.05.04 11:00:05

74년간 한번도 고쳐지지 않은 日헌법
방역 실패·中위협 커져…개헌 필요성 여론↑
자위대 명기부터 부부별성제까지 스펙트럼 다양
미·중 갈등 속 日역할론…국제정세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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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이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일본 각 매체에서는 헌법에 대한 일본국민 인식 조사에 나섰습니다. 각 조사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평화헌법’ 지지여론, 中위협 증대로↓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개헌이라고 하면 바로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모를 떠올리지만 사실 일본 내에서 논의되는 개헌 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헌법은 1946년 11월 공포, 1947년 2월 시행됐습니다. 현존하는 헌법 중 가장 역사가 긴 헌법이기도 합니다.

1946년이라는 날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의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전쟁의 포기와 전력의 불(不)보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9조에서 나타납니다. ‘전범국가’인 일본에게 군대를 가지지도 말고, 전쟁을 개시할 수 없도록 하는 승전국의 주문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만 활동하는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등 일본 우익 혹은 보수세력은 일본의 헌법이 점령 시기 GHQ의 강요로 제정됐기 때문에 자주적인 헌법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개헌을 주장해왔습니다. 특히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등 헌법 9조의 개정은 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 국민에 의해 강하게 저지돼 왔습니다. ‘평화헌법’이라는 헌법 9조의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국민은 이 법이 일본의 군비 증대를 억제하고 경제 성장에 집중할 수 있는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4년 아베 내각이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을 용인한 이후 헌법 9조 개헌에 대한 반대 여론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같은 여론을 알고 있기에 개헌을 평생의 정치과제로 내세운 아베 전 총리조차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했던 2016년 당시에도 국민의 여론을 살펴야 한다며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그러나 지난 3일 일본 매체들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개헌뿐만 아니라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등 헌법 9조 개정에 대해서도 찬성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수직 하향하는 와중인데, 오히려 개헌에 대한 지지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는 점에서 아이러니입니다. 코로나19 방역 실패 속에서 오히려 헌법에 대한 개정 필요성을 느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현재 개헌 쟁점 중에는 전쟁 및 테러, 대규모 재해 등 평상시의 국가체제로는 대처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생길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게 강한 권한을 주는 ‘긴급사태조항’을 제정하자는 부분이 있습니다. 긴급사태시 내각은 법률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가진 정령을 제정할 수 있고, 국회의원의 임기 연장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야당인 입헌민주당 등은 코로나19 방역 실패는 헌법의 미비가 아닌 집권 정당의 책임이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등 개헌 찬성세력은 이번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헌법 개정에 접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중국이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위협을 강화하고 있는 것 역시 최근 이같은 여론의 배경으로 꼽힙니다.

요미우리 신문은 중국 공선(公船)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센카쿠열도 주변의 일본 영해를 수시로 침범하는 데 안보 위협을 느낀다고 답한 사람이 ‘매우’와 ‘다소’를 합쳐 95%나 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패권주의적인 움직임을 강하게 하는 중국을 향한 경계심이 개헌 여론을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2014년 헌법 해석 변경, 집단자위권 인정

74년 동안 한 번도 고쳐지지 않은 만큼 일본의 개헌 쟁점은 헌법 9조 개정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망라합니다. △결혼 이후에도 부부가 각각의 성(姓)을 유지하는 부부별성제 도입 △천황을 국가 상징이 아닌 원수로 명기해야 한다는 주장 △기본적 인권으로서 평등권·자유권·사회권에 더해 양호한 환경을 향유할 권리인 환경권과 개인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프라이버시권 등 새로운 권리를 보장하는 것 △총리를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수상공선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개헌 문제를 ‘전쟁국가로의 변모’라고 인식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도식입니다. 헌법을 개정하진 않았지만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함으로써 일본은 이미 사실상 ‘전쟁가능 국가’로 변모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함정이 미 해군과의 연합훈련에서 욱일승천기를 게양하고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출처=미 해군)
집단자위권이란 일본이 침략을 당하거나 위협에 처하지 않더라도 인접한 국가가 제3의 국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무력 개입을 할 수있는 권리입니다. 과거 일제의 침략을 받았던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가 긴박해질 경우 일본군이 개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의 반응은 한국 동의 없이 일본이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일본 내 방위안보 논의가 일본의 평화헌법 정신을 견지하고 투명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역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권 사항인 헌법 해석을 타국이 왈가왈부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제약 외에도 국제정세상 이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필요성에 불을 지핀 것은 국제사회의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일본은 헌법 9조에 따라 자위대 파견이 불가하다는 이유로 130억 달러를 지불했는데 이는 국제사회의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다른 나라는 청년장병들을 전쟁터로 보내는데 일본은 돈으로 해결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일본이 국제평화유지군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1992년 6월 15일 유엔국제평화유지활동 협력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후 1993년 북핵 위기, 1998년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 1999년 괴선박 일본영해 잠입, 이라크 전쟁 등 다양한 계기를 통해 헌법 9조의 구속력은 약해졌습니다.

개헌 위한 국민투표법 개정 추진

커지는 미·중 갈등 속에서 현재 미국은 ‘동맹’을 통한 대중 견제 기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높아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과 가장 크게 보조를 맞추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미국은 아마 일본이 헌법 9조를 개정하길 바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일본의 개헌이 단기간에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정권 주변 인사의 비위 사건이 잇따라 터지며 스가 내각의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개헌과 같은 중대 이슈를 이끌만한 지도력이 있는지 여야 모두 의문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는 듯합니다. 여당은 개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회기인 6월 16일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국민투표법에는 상업시설 등에 공통투표소 등을 설치하는 것에 여야가 일단 합의한 상태입니다.

과거 식민지였으며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는 이같은 일본의 행보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일본의 개헌 움직임을 반일 이슈로 여론몰이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일외교를 강화해 대화를 통해 안보 긴장도를 낮추고, 헌법 개정 과정에서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가 녹아들도록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책이라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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