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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세계시민] 내년 총선, 이민정책 공론장 돼야

기자I 2023.12.04 12:56:38
[이희용 언론인·본사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세금·복지와 함께 이민정책이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핵심 쟁점으로 꼽힌 지 오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이주민과 난민이 급증하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강경한 반이민 공약을 내세운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 정권이 탄생했다. 최근 스위스와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이주민 혐오 정서가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 문제는 최근 들어 정가의 논점으로 떠올랐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고용,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 숙련 기능인력 확대 등이 여야 정치권과 관련 단체 등에서 격론을 빚고 있다. 지난달 22일 광역지자체들은 국회 입법조사처와 함께 외국인 취업자 비자 발급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위임할 것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민국 이제 망했네요”라는 외국인 석학의 탄식이 터져나올 정도로 저출생 문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더욱이 수도권만 벗어나면 아이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고 학생이 줄어 폐교가 속출하는가 하면 일손이 없어 농작물이 썩어가고 있다.

인구 문제는 당장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이제는 이민 국가로 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이민 정책은 노동 정책이 아니라 인구 정책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이제는 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하는 시대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기회가 남아 있다.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해외에 머물고 있는 동포와 입양자의 상당수도 모국에 귀환해 정착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지속하리란 보장은 없다. 20년째를 맞은 고용허가제는 인권침해 요소가 많아 국제적으로도 악명이 높고 국내적으로도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

100종이 넘는 비자 가운데 결혼(F-6) 관련 두 종류 말고는 이민 비자가 없을뿐더러 체류기간 연장이나 영주권 취득 문턱이 너무 높다는 불만도 크다. 고급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학섕들의 국내 취업의 문도 비좁은 형편이다. 다문화사회에 걸맞은 시스템과 국민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를 먼저 맞은 일본은 2020년대 들어 정책 기조를 급변침해 숙련된 외국인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일본 내 취업 비율도 우라나라보다 훨씬 높다.

우수 인재와 양질의 이민자를 유치하려는 경쟁은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이민국가를 중심으로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에서도 경쟁이 불붙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한국의 주요 정당은 시선을 끌 만한 단발성 제안만 불쑥 던질 뿐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고 국익에 도움되는 정교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주민을 포용하자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차별적 제도나 관행에는 눈을 감는 등 자기모순적이고 일관성도 없다.

정부도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인 구상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한 채 부처마다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땜질식 대책에만 치중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사안이 지닌 민감성과 폭발력을 의식해 눈치만 보는 것이다.

이제는 이민정책을 수면 위에 올려 공론화해야 한다. 이민청이 됐든 또 다른 이름의 부처가 됐든 해묵은 콘트롤타워 설치 논의도 서둘러 마무리지어야 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128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은 이주민에 관한 기본 입장과 구체적인 정책을 공약으로 밝히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인구 절벽의 위기에 놓인 우리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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