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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보다 무서운 금감원'…5대 은행 사실상 자율배상 수용

김국배 기자I 2024.03.27 11:35:20

ELS 8조 판 국민은행도 29일 이사회
자율배상안 확정할 듯
배임 우려하던 은행들, 과징금 리스크 줄이는 게 이득 판단
은행권 다음 달 배상 절차 시작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를 가장 많이 판 KB국민은행이 오는 29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자율 배상안을 논의하기로 하면서 5대 은행이 사실상 금융당국의 자율 배상 요구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오는 29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자율 배상안을 확정할 전망이다. 전날엔 비공식 이사 간담회를 열어 자율 배상안을 보고했다. 그간 KB국민은행은 판매 계좌 8만여 개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해왔다.

8조원이 넘는 판매액으로 배상에 가장 어려움을 겪던 KB국민은행까지 자율 배상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5대 은행 모두 금감원의 뜻대로 자율 배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ELS 판매액이 가장 작은 우리은행이 지난 22일 이사회를 열어 자율 배상을 결정했고 이어 27일 하나은행, 28일 NH농협은행, 29일 신한은행이 이사회를 열게 된다. 전체 은행의 배상액은 약 2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5대 은행이 자율 배상을 결정하게 된 배경엔 금융감독원의 압박이 있었다. ELS 손실 배상을 서둘러온 금감원은 지난 11일 분쟁조정 기준안을 내놓으면서 자율 배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자율 배상을 하면 과징금 등 제재 감경 사유로 고려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금융소비자법 시행에 따라 은행 등 판매사들은 판매 규제를 어기고 상품을 팔면 전체 판매액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내야 한다. 2021년부터 3년간 은행에서 판매한 ELS 판매액은 15조 4000억원이다. 이중 불완전 판매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30%라고 가정한다면 최대 2조 3000억원 가량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배임 문제를 이유로 주저하던 은행들도 결국 자율 배상안 마련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간을 끌어 과징금 리스크를 키우기보다 자율 배상이 유리하단 판단이다.

은행들이 주주보다 금융당국의 눈치를 더 살피는 상황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앞다퉈 언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자율 배상을 논의하겠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은행들에 주주보다 더 무서운 게 금감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2019년 DLF(파생결합펀드) 손실 사태 때 은행의 ELS 신탁 판매도 금지하려 했으나, 은행권의 호소로 한발 물러난 점을 들며 불완전 판매에 대해 엄중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배상 비율은 금감원이 밝힌 대로 대다수 가입자가 20~60% 범위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은 현재 원금 회수 비율을 약 70% 정도로 보고 있다. 손실률이 50%라고 치면, 배상 비율은 평균 40% 정도 될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해 500만원의 손실을 본 가입자는 남은 원금 500만원과 손실액의 40%인 200만원을 돌려받아 원금의 70% 정도 회복할 수 있다.

5대 은행이 자율 배상을 수용하기로 방향을 잡으면서 본격적인 배상 절차는 다음 달 시작될 것으로 예상한다. 가장 먼저 자율 배상을 수용한 우리은행은 다음 달 12일 첫 만기분부터 투자자와 배상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확정된 투자자는 조정 비율 협의와 동의를 마치면 일주일 이내로 배상금 지급이 완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율 배상과 별개로 금감원도 다음 달 대표 사례에 대해 분쟁조정 위원회를 열어 분쟁 조정 절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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