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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낸 공정위 부위원장 "사자는 풀을 뜯지 않는다"

안승찬 기자I 2009.08.11 15:12:40

"대기업 발목잡는 규제 풀어줘야"
"中企 진입장벽 도움안돼..경쟁력 키워야"

[이데일리 안승찬기자]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한 서동원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했다.

서 부위원장은 11일 기자들과 만나 "공정위 직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내가 능력이 안돼 기대에 못미쳤다"면서 "그래도 행운아였고, 행복한 마음으로 떠난다"고 말했다.

서 부위원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퀄컴 등 세계적인 IT기업의 독과점 지위남용 문제를 다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공정거래당국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가 공정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백용호 전 공정위원장이 국세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유력한 차기 위원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위원장 자리는 정호열 성균관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신임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1년5개월 있었기 때문에 이쯤이면 물러날 때도 됐다"고 말했다. 또 "새 위원장은 경쟁법 전문가여서 보필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새 위원장이 새 체제 구상하도록 돕는 게 도리"라고도 했다.

서 부위원장은 쉬면서 운동도 하고 부인인 신혜경 청와대 국토해양비서관과 함께 국내여행도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신 비서관도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위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일도 역시 마이크로소프트 사건을 꼽았다. 서 부위원장은 "처음에는 미국의 거대 IT기업을 상대로 어떻게 조사를 해야할지도 막막했다"면서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아서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퀄컴 건까지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열렬한 규제완화주의자"라고 했다. 서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높은 수준"이라며 "대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재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는 재벌 문제를 직접 다루는 방법을 써야지 규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이다. 규제 자체가 중소기업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서 부위원장은 "사자가 풀을 뜯어먹으면 정신이 없거나 어디가 아픈 경우이지, 정상적인 경우는 풀을 먹지 않는다"라며 진입장벽을 완화하더라도 무분별한 대기업 진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한편 서 부위원장의 사표는 이날이나 늦어도 내일까지 수리될 것으로 알려졌다. 서 부위원장은 52년 서울생으로 서울대를 나와 지난 74년 공직에 입문,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등을 거쳤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독점국장,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공정위 상임위원 이후 김앤장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이명박 정부 취임과 함께 공정위 부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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