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일제강점기부터 서울올림픽까지, 다방에선 무슨 일이?

장병호 기자I 2021.04.16 11:28:27

극단 백수광부 신작 연극 '다방'
中 라오서 희곡, 한국 근현대사로 각색
시대 변화 속 권력 억압 받는 서민 이야기
배우들 열연 빛나…25일까지 공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어서 오십쇼!”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방 주인이 관객을 맞이한다. 다방 주인의 안내를 받아 무대 양옆의 객석에 앉으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다방 손님이 된다. 공연 시작 전 관객에게 안부를 묻는 다방 주인의 모습이 훈훈하다. 그러나 따뜻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연극은 극 말미에 이르면 관객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시대 속에서 고통 받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연극 ‘다방’의 한 장면(사진=극단 백수광부)
극단 백수광부의 신작 연극 ‘다방’이 지난 7일부터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낙타상자’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중국 극작가 라오서의 대표 희곡을 극작가 윤성호가 한국 사회상에 맞춰 번안하고 각색한 작품이다. 극단 백수광부 대표 하동기의 연출 아래 극단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 첫 번째 작품으로 공연 중이다.

작품은 1938년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4·19 혁명 이후인 1961년, 그리고 직선제 이후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 속에서 다방에 모여든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인 한성덕(유성진 분)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다방을 운영하며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평범한 서민이다. 계층도 욕망도 각기 다른 인물들이 다방에서 얽히고설키는 가운데, 한성덕은 다방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만 신경 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누군가는 권력을 대변하고, 누군가는 권력에 저항하며, 누군가는 권력에 순응한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옛 양반들, 담판을 지으러 온 주먹패, 경찰서 순사와 총독부 관리 등 당시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을 통해 복잡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들의 얽힌 관계는 1960년대, 그리고 1980년대에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대하드라마처럼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인물들의 관계가 극에 흥미를 더한다.

연극 ‘다방’의 한 장면(사진=극단 백수광부)
그런 가운데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다방 주인인 한성덕의 존재다. 그는 자신의 삶의 전부와 다름 없는 다방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친다. 때로는 권력을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의 피해를 입은 이들을 감싸안기도 한다. 그는 시대에 순응하며 사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한 다방은 결국 재개발이라는 욕망 앞에 사라지고 만다. 다방을 잃을 처지에 놓인 한성덕이 50년 전 다방을 찾았던 사업가 고병국(홍상용 분), 양반 김이재(민병욱 분)와 함께 향을 피우는 장면은 시대와 상관없이 올곧게 살아온 인물들의 고통을 잘 보여준다.

윤성호 작가는 ‘작가의 글’을 통해 “다방의 운영자이자 주인공인 한성덕은 가장 평범한 사람을 상징한다”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론 비겁하게, 그리고 때론 따뜻하게 사람을 대하며 다방을 운영하고 삶을 살아간다. 이 평범한 사람이 시대 안에서 걸을 수밖에 없는 길을 조명하는 것이 이 작품의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배우들의 열연도 ‘다방’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한성덕 역의 유성진을 제외한 배우들은 각 시대를 넘나들며 1인 다역 연기를 펼치며 극을 탄탄하게 이끈다. 유성진, 민병욱, 홍상용 외에 김경희, 이민애, 박정민, 박찬서, 최한결, 김경희, 조재원, 김효중, 심재완, 권다솔, 구송미, 김혜영, 신주호, 신대철, 김신혜 등이 출연한다.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연극 ‘다방’의 한 장면(사진=극단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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