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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당신은 성매매에서 자유로운가

장병호 기자I 2020.06.12 11:21:01

극단 신세계 연극 '공주들2020'
성매매로 돌아보는 한국 근현대사
N번방 사건 등 녹여내 동시대성 강화
사회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 강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극단 신세계의 연극 ‘공주들2020’이 공연 중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티켓 부스에서 표를 찾으면 극장 안내 직원이 ‘윗구멍’ ‘아랫구멍’ ‘뒷구멍’이라는 이름이 붙은 3개의 출입구 중 어느 쪽으로 입장할지 묻는다. 독특한 입장 방식이라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흥미로움은 공연이 끝나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뒤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돌아온다.

제목을 보고 동화 속 공주를 떠올렸다면 큰 오산이다. 지난 9일 이곳에서 개막한 ‘공주들2020’은 ‘구멍(孔)의 주인(主)’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구멍은 입, 생식기, 항문 등 사람이 가진 구멍을 가리킨다. 작품은 주인공 김공주의 지난 90년 인생을 찬찬히 따라가며 김공주가 지닌 구멍의 주인은 누구인지를 질문한다.

연극 ‘공주들’의 2019년 공연 장면(사진=극단 신세계).


김공주의 인생은 그야말로 기구하다. 일제강점기 말, 열 살이 되던 해 삼촌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버마(현 미얀마)와 싱가포르, 만주를 떠돌았다. 해방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제5종 보급품’으로 한국군에 ‘보급’됐고, 미군을 위한 ‘양공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김공주의 인생은 기지촌, 용산, 미아리 등 성매매 집결지로 흘러간다. 그야말로 성매매로 돌아보는 한국 근현대사라 할 만하다.

193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성매매와 관련한 중요한 사건들이 당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와 함께 숨 가쁘게 흘러간다.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이야기도 등장한다. 한국관광공사의 전신인 국제관광협회 ‘요정과’에서 70년대 기생관광을 관리했다는 이야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집결지 미관정화사업을 추진하며 유리방을 만들었다는 내용은 허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관객에게 나눠주는 프로그램북에 빽빽히 적힌 온갖 자료와 참고문헌은 이 연극이 철저히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2004년 제정된 ‘성매매방지특별법’을 둘러싼 여성·시민단체와 성매매 여성들의 갈등처럼 여성들 사이에서도 각기 다른 성매매에 대한 관점 차이를 낱낱이 그려내며 관객을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연극 ‘공주들’의 2019년 공연 장면(사진=극단 신세계).


2018년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공주들’이라는 제목으로 초연한 작품은 지난해 재공연에 이어 올해는 ‘공주들2020’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올해는 N번방 사건과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의 갈등을 작품에 녹여내 동시대성을 강화했다. 장자연 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버닝썬 사건 등 지난 10여 년간 벌어졌던 성매매 및 성폭력, 여성 폭력 사건 뉴스 보도를 편집한 영상이 등장하는 장면은 지금도 성매매, 나아가 성을 통한 착취와 폭력 문제가 여전함을 돌아보게 만든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로 관객을 때때로 불편하게 만드는 극단 신세계는 ‘공주들2020’에서도 어김없이 씁쓸한 뒷맛을 안긴다. 공연은 커튼콜 없이 끝난다. 관객은 의자에 홀로 앉은 김공주를 뒤로 하고 다시 뒷구멍을 통해 극장 밖을 나서야 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야 극장 입장 전 세 구멍 중 하나를 골랐던 나의 행위가 성매매에 대한 일종의 은유였음을 알게 된다. 당신은, 아니 우리는 성매매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공주들2020’은 우리 사회가 이 질문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공연은 14일까지.

연극 ‘공주들’의 2019년 공연 장면(사진=극단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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