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들 왜 줄줄이 인력감축 나서나

김세형 기자I 2008.12.10 15:32:39

"가장 쉽고 표나는 효율화 방안"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농촌공사를 공공기관 효율화의 모범사례로 추켜 세운 뒤 공기관들의 인력 감축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경영 효율을 10% 이상 끌어 올리면 된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인력 감축만큼 마땅한 수단이 없어 감축이 가장 모범적이고 무난한 효율화 방안이 되고 있다.

자연감소분을 고려할 때 각 기관들이 발표하는 숫자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에서는 신규 취업자수가 5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고용 시장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꼭 이 시점에 실업자를 양산해야 하느냐는 반발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 10%는 기본..15%는 돼야

이 대통령이 노사 자율 합의로 15% 인력구조조정를 추진키로 한 농촌공사를 두 차례나 치켜 세우자 공기업들의 인력 감축 발표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질타에 깜짝 놀란 농협이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자체적으로 15% 감축안을 마련했고,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인 한국전력도 2000명 가량인 10% 가량을 줄이는 것을 정부측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확정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부실 공공기관의 대명사로 지목돼 오던 석탄공사가 연말까지 16%를 줄이겠다고 지난 9일 공식 발표했고, 지경부 산하 가스안전공사도 10일 3년내 인원의 10%를 축소하겠다는 효율화 방안을 내놨다. 가스안전공사는 10% 감축이 안전관리기관 특성상 감축 한계라고 강조했다.

재정부가 이달 26일까지 공공기관 효율화방안 중간점검을 실시할 예정으로, 어차피 맞을 매 먼저 맞아서 점수나 깎이지 말자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 인력감축 "가장 쉽고 표나는 효율화 방안"

당초 경영효율 10% 제고를 목표로 추진된 경영효율화가 이처럼 인력 감축으로 흐르는 것은 인력 감축이 가장 표를 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재정부 등에 따르면 당초 재정부는 기관 자율적으로 10% 제고 방안을 제출하도록 했다. 재정부는 공기업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으니 기관측에서 안을 내놓고 재정부를 설득하면 인원 감축이 없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기관들이 가져온 방안이 재정부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농촌공사가 모범으로 지목되면서 결국 인력 감축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재정부 관계자는 "시스템 효율화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공공기관은 일반 사기업처럼 순이익 증가 등 객관적인 평가 지표가 충분치 못하다"며 "기존에 10명이 하던 일을 9명으로 줄여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정리해고만 안하면 된다?

공기업의 인력 감축이 주된 관심이 되면서 청와대 등 정부측은 획일적 10% 감축이 10% 효율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박재완 청와대 경제수석은 10일 한 라디오에 출연, "인력감축이 필요하더라도 강제로 본인의사에 반하는 정리해고보다는 자연감소나 희망퇴직, 명예퇴직 등으로 몇 해에 걸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또 임금 삭감과 아웃소싱, 임금피크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인력감축을 하되 과거 IMF때처럼 회사 게시판에 해고자 명단을 게시하고 회사를 나가게 하는 `정리해고`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처지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한국전력 등 예산 규모가 1조원이 넘는 산하 12개 공공기관은 민간에서 대체가 가능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아웃소싱할 것을 주문하고, 이달 중순까지 계획을 제출토록 압박했다.

신규 사업이 없다면 아웃소싱된 부문의 인력은 회사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다. 지경부는 `이례적으로 강도높게` 주문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결국 아웃소싱을 인력감축의 방법으로 적극 활용하라는 의미로 읽히고 있다.

◇ `티내기` vs `꼭 잘라야 하나`

한편 공기업 인력 감축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인력 감축에 거품이 끼어 있어 티내기라는 지적과 고용 한파가 몰아치는 이 시점에 구태여 실업자를 보태야 하겠느냐는 것이다.

2000명 감원설이 거론되고 있는 한국전력의 경우 그냥 놔둬도 회사를 떠나는 정년퇴직 등 자연퇴직 인력이 꽤 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신규 채용을 하지 않을 경우 3,4년만에 10%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또 A기관의 경우도 10% 감축을 공표했지만 신규 채용을 안할 경우 2% 정도만 줄이면 된다.

반면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취업자는 2381만6000명으로 지난해 같은달보다 7만8000명, 0.3% 늘어나는데 그쳐 두달 연속 10만명을 밑돌았다. 이같은 신규 취업자수는 지난 2003년12월 이후 4년11개월만에 최저 수준이다. 정부가 내건 20만개 창출의 절반에 크게 못 미쳤다.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최근 2% 안팎으로 전망되면서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위해 공공기관 인력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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