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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조찬 모임 창시자’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별세

피용익 기자I 2021.01.10 19:09:50

[추도사]오종남 김앤장 고문 “정치·돈·종교 얽매이지 않고 CEO 개발”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최고경영자(CEO) 조찬 모임을 만든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HDI) 회장이 지난 7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고인은 ‘지식을 통한 인간 개발’을 이념으로 세계에서 존경받고 신뢰받는 나라, 선진국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교육을 위해 46년 동안 헌신했다.

고인은 1968년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1기로 졸업한 후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코리아마케팅 대표를 거쳐 1975년 인간개발연구원을 설립했다. 그해 2월5일 제1회 ‘인간개발 경영자 연구회’가 열렸고, 이 조찬 모임은 40년 넘게 매주 목요일마다 계속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비롯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이 조찬 모임에서 강연했다.

오종남 김앤장 고문(SC제일은행 이사회 의장)은 10일 이데일리에 ‘고(故) 장만기 회장님을 보내며’라는 제목의 추도사를 보내 왔다.

다음은 추도사 전문이다.

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하루 세 끼 밥 먹는 문제’를 해결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다. 세계은행의 빈곤선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 ‘하루 1달러’(2015년 1.9달러로 상향)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406달러가 된 1973년에 빈곤을 퇴치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75년 2월5일, 38세의 장만기 청년은 인간 개발을 위한 새벽 7시 조찬 모임을 시작했다. ‘하루 세 끼 밥 먹는 문제’를 겨우 해결한 1975년에 그는 어떻게 인간 개발에 눈이 떴을까?

그의 답은 명쾌하다. “경제가 좋아지려면, 국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CEO의 능력이 절대적이라 생각했다. 경제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리더는 CEO 아닌가? 그래서 CEO를 강하게 키워 그들로 하여금 나라를 잘 키우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과정에서 획기적인 기여를 한 ‘한국개발연구원(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이 있다. KDI는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 수립 및 정책 입안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가 1971년 3월에 설립한 국책 연구기관이다. 그로부터 4년 후 한 젊은이가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기업 CEO의 인간 개발이 필요하다며 ‘인간개발연구원(HDI·Human Development Institute)’을 설립한 것이다. 필자는 KDI와 HDI를 경제개발 연구와 인간개발 연구의 양대 축이라고 비교하곤 한다.

20년 후인 1995년에는 전남 장성군의 김흥식 군수와 손을 잡고 ‘장성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이는 상주시, 경주시, 서울 강서구 등 수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과 민간인 대상 교육 사업을 시작하는 모델이 됐다. 최근에는 지도층에게 경제발전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 문제에 대하여 배려와 섬김의 자세로 돌보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교육까지 확대하고 있다.

1월7일 장만기 회장님께서 별세했다. 장만기 회장님을 보내며 그가 보여준 특이한 삶을 돌아본다. 누구든 장 회장님의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기가 참 어렵다. 다음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분들을 알고 계실까? 끝으로 이토록 유명한 ‘HDI’의 설립자로서 왜 돈은 모으지 못했는지?

장 회장님은 이에 대한 답을 ‘3불’로 간단히 정리한다. 정치와 돈과 종교, 이 셋과는 얽매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견지하고 살았다. 개인적 인간관계도, 인간개발연구원 같은 모임도, 정치나 돈이나 종교에 얽매이면 초심(初心)이 깨진다. 정치적으로 여당, 야당, 좀 더 잘 하기 위해 필요한 돈, 그리고 첨예하게 대립하기 쉬운 종교, 이 셋과 얽매이지 않은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장만기 회장님은 우리 사회에 ‘조찬’ 문화라는 유산을 남기고 떠났다. 유지를 받들어 생전에 꿈꾸었던 ‘인간개발’을 제대로 이어갈 것을 다짐하며 슬픔을 참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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