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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온 편지] 93. 끝없는 이민자 논쟁

한정선 기자I 2018.10.22 09:40:56
이민이 영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도시, 작은 마을 등 출신 지역에 따른 영국인 인식 정도. 10이 가장 긍정적.(출처=가디언, ICM)
[런던=이데일리 이민정 통신원] 영국은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진행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브렉시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영국 국민이 EU 회원국을 관두겠다고 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민자 문제입니다. 브렉시트를 주장한 쪽은 EU 출신의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복지시스템을 갉아먹는다고 강하게 비판했었죠.

영국이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로 결정한 이후 약 2년3개월 정도 흘렀습니다. 현재 EU측과 결별 협상을 벌이고 있는 영국은 내년 3월이면 EU를 완전히 탈퇴하게 됩니다. EU와 이별 수순을 밟고 있는 동안 영국인들의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영국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과 실제 이민자들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독립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영국 이민자문회위원회(MAC)는 영국 내무부 의뢰를 받아 산업계, 유관 기관, 정부기관 등을 대상으로 조사해 작성한 보고서를 최근 내놨습니다. 이민 정책이 영국 내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며 이민자들이 영국에 잘 정착하면 장기적으로 영국 복지와 공공시스템에 부담되기보다는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의 일자리와 임금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결론 냈습니다. 아울러 이민자들이 지역 사회 통합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밝혔죠.

MAC는 저숙련 이민자보다는 고숙련 또는 고임금 이민자가 영국 경제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돈을 많이 벌면 세금을 많이 내면서 거주하고 있는 국가 재정 수입에 기여를 하니 예상되는 결과입니다.

그러면서 저숙련 이민에 대해서는 이미 영국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일손 부족이 뚜렷한 농업 부문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비자를 내 줄 필요가 없다고 정부에 권고했습니다.

영국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인식을 어떨까요.

영국 여론조사업체 ICM이 지난 6월 성인 366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와 씽크탱크 ‘브리티시 퓨처’와 인종차별 반대 그룹인 ‘호프 낫 헤이트’가 60명의 시민 패널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이민자들 때문에 공공서비스 부문이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민자들이 영국인들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도 일할 의지가 있으면서 영국인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낮추는데 악영향을 준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절반이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저숙련 이민자 수가 줄어들기를 바라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영국인들이 꺼리는 일을 하면서 영국 경제를 부양하는데 기여하냐고 물었을 때는 응답자의 63%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비슷한 수치의 응답자들이 이민자들이 영국보건시스템(NHS) 인력 충원 등 공공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질 러터 브리티시퓨처 전략 부문 디렉터는 “영국인 대부분은 이민자들이 영국의 경제나 문화에 미치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서 “다만 영국인들은 정부가 영국으로 들어오는 것에 인력에 대해 더 많은 제한 권한을 가지길 바란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영국인들의 25% 정도는 의회 의원들이 이민과 관련해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러터 디렉터는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정부가 이민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신이 있다”라며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선택과 목소리를 정치인들이 듣기를 바라고, 정치인들이 약속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민자들이 영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보다 많았습니다.

영국인들의 10명 가운데 6명 정도가 다른 국가나 문화 출신으로 영국에 와서 사람들이 영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대로 영국인 10명 가운데 4명 정도는 이민자들로 인한 다문화가 영국 문화를 손상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반적으로 영국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민자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작은 도시나 시골에 사는 사람일수록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호프낫헤이트의 로지 카터는 “이민 문제는 국가적인 문제이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 자신의 삶의 환경과 경제 상황에 이민자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따라 이민자에 대한 시각을 결정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민자문회의 권고 등을 반영해 영국이 유럽연합을 완전히 탈퇴하고 난 뒤 이민 정책을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보다 고숙련, 고임금 이민자들이 비자를 받기 쉽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자를 내주는 데 있어 유럽연합 지역 출신이나 이외 지역 출신 이민자들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밝혔죠.

그러나 MAC 권고안처럼 저숙련 이민자 유입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영국 내 논란이 거셉니다. 특히 비숙련 노동자들이 대거 필요한 영국 건설, 유통, 서비스업계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EU 출신 노동자들은 현재 영국 식품제조업계 노동력의 30%, 창고업 노동력의 16%, 건설 인력의 1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산업연맹(CBI)는 특히 EU 노동자 유입을 현재의 50% 정도로 제한할 경우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의 경제 규모가 2041년까지 이민 제한이 없었을 때와 비교해 5%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야기했던 이민자 문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자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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