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크리스텐슨은 지난 2006년 11월 벤처캐피털(VC) 로즈파크어드바이저스를 공동창업한 전문 투자자다. 자신과 자신이 세운 VC가 각각 쿠팡 지분 5.1%씩(클래스 A와 클래스 B 주식을 모두 고려한 상장 후 지분율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둘을 더하면 상장 당시 김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 B 주식을 전부 클래스 A로 전환할 경우 지분율인 10.2%와 같다. 창업주와 같은 마음으로 쿠팡을 ‘떡잎’ 단계부터 알아보고서 끝까지 믿고 지지해줬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신뢰는 아버지인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하버드대 교수와 김 의장의 인연에서 시작했다.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를 중퇴한 김 의장은 ‘파괴적 혁신이론’을 주창한 고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김 의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로부터 큰 영감을 받고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됐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길고 긴 관계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역설적으로 쿠팡의 성공적인 뉴욕증시 안착이다. 매튜 크리스텐슨은 쿠팡의 미국 상장(IPO)으로 세계최대거래소인 NYSE에서 주식을 팔 수 있게 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으로 엑시트(자금 회수)할 기회를 얻었다.
이 때문에 상장 전부터 주요 장기 투자자들이 조만간 지분 정리에 들어가리라는 예상이 많았다. 매튜 크리스텐슨이 상장 과정에서 구주를 매각했는지, 비상임이사 사임 전후해 이를 처분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것은 쿠팡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쿠팡 관계자는 “공시된 내용 이상은 언급이 불가능하다”고만 했다.
매튜 크리스텐슨의 퇴장을 쿠팡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의 연장선으로 보기도 한다. 김 의장이 지난달 31일 한국 쿠팡(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로 하자마자 모회사인 미국 쿠팡 Inc. 이사회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매튜 크리스텐슨의 사임 이후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 빈자리가 채워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랜 세월 비상임이사를 꿰차고 있던 에인절 투자자들이 차례로 이사회를 떠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매튜 크리스텐슨, 벤자민 선, 닐 메타(2010년 12월) 등이 비슷한 시기 이사회에 합류했다. 이 경우 쿠팡 이사회는 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민한 조직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