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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여대 기숙사에서 23년째 내려오는 ‘행운의 편지’[중국나라]

이명철 기자I 2024.04.09 10:21:41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날이 발전한다’ 쪽지 온라인 화제
2001년 쪽지 썼던 여학생, 졸업 후 기업 이끄는 경영자 돼
중국 대학생 취업난 극심, 경제 위기 불안 속 작은 위안

[베이징=이데일리 이명철 특파원] 중국 저장성에 있는 한 대학교의 여자 기숙사에는 특별한 ‘행운의 편지’가 있다.

저장대 연구소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쉬에씨는 새 기숙사에 입주한 첫날 이층 침대 밑에 붙어있는 하나의 메모장을 발견했다. 이는 저장대에서 하나의 전설처럼 여겨지는 과거 선배가 올린 쪽지였다.

중국 저장대 여학생 기숙사 침대 밑에 적혀 있던 쪽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날이 발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바이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해당 쪽지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날이 발전한다’(好好學習 天天向上) 내용의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문구 아래에는 작성일이 적혀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23년 전인 2001년 1월 21일이었다.

쉬에씨는 이 쪽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소셜미디어에 내용을 게시했다.

그는 “나는 1999년생인데 내가 두 살 때 쓰인 쪽지를 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며 “아마 이 글을 쓴 선배도 나처럼 매일 연구, 학습 과제가 많아 막막했을테고 이 쪽지를 붙여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에서 쪽지의 내용이 화제가 되면서 동창들이 연락을 취하자 작성자도 밝혀졌다. 23년 전 쪽지를 썼던 사람은 이곳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팡친씨였다. 그는 학위를 받은 후 직접 창업해 현재는 사업체를 이끄는 경영인이 돼 있었다.

23년 전 대학교 기숙사에 한 쪽지를 남겨 화제가 된 팡친씨. (사진=바이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팡씨는 학교에서 썼던 쪽지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대학교 1학년 1학기 수업을 마친 후 집중력이 부족한 자신을 다잡기 위해 윗 침대 밑에 붙여놓은 것이라고 회상했다.

팡씨는 “우리 전공에는 5명의 여학생이 있었는데 모두 훌륭했고 밤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나 혼자 아침마다 쪽지를 보면서 내 자신을 격려하곤 했는데 어느날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공부 부적’이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지금 돌이켜 보면 1학년 때 가졌던 꿈이 내 인생의 전반부, 어쩌면 후반부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3년 전 팡씨와 친구들의 에피소드도 훈훈하지만 온라인에서는 23년간 이 쪽지가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에 흥미로워했다. 그만큼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생활하던 학생들의 많은 공감대를 샀기 때문이라는 평이다.

대학생들의 취업 고민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큰 사회 문제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대졸자수는 전년대비 21만명 늘어난 1179만명에 달한다.

중국의 지난해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은 21.3%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청년 10명 중 2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업률에 충격을 받은 중국 정부는 이후 해당 통계를 발표하지 않다가 12월부터 학생을 제외한 청년 실업률 통계를 내놨다. 해당 수치도 올해 2월 기준 15.3%로 높은 수준이다.

중국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해도 메이투완(한국의 배달의민족 같은) 라이더를 해야 한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대학교를 나와도 취업할 곳이 없으니 대학원 경쟁률이 치솟는 현상도 발생한다.

지난달 24일 중국 푸양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구직자들이 참석해있다. (사진=AFP)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중국 중난대 연구를 인용해 10~19세 중국 청소년 1억5600만명 중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앓는 사람들이 900만명 이상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젊은층들이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상황에서 팡씨의 쪽지가 더 큰 울림을 준 셈이다.

팡씨는 저장대 동문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기부금을 내 학생들에게 맞춤 옷을 전달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도 있다.

그는 “대학교는 나에게 탄탄한 학문과 참된 지식을 탐구할 기회를 줬고 시야와 포부를 열어줬다”며 “내가 이룬 성공은 학교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로 모교에 보답하고 젊은 동문들을 도울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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