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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신경영 비전] 핵융합발전의 꿈

e뉴스팀 기자I 2021.10.29 11:25:44
[이상훈 전 두산 사장·물리학 박사] 원자력 에너지는 현 정부 들어 버리고 피해야 할 에너지원이 되었지만 그동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소량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는 물리 현상을 이용해 발전을 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질량 에너지 등가의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게 된다. 이를 수치로 환산하면 질량 변화로 발생하는 에너지의 양은 변화한 질량의 십경배에 달하게 되는데, 십경이라면 1에 0이 17개나 달린 엄청난 숫자이기 때문에 아주 적은 질량 변화로도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

원자력 발전은 원전 폐기물 문제와 후쿠시마 사태의 후유증으로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데 그만한 에너지원이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쓰는 것일 뿐 대안이 있다면 피하고 싶은 에너지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원자력 발전의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에너지원이 있다. 바로 핵융합 발전이 그것이다. 핵융합 발전은 수소 원자 두 개가 만나 헬륨 원자가 되는 핵융합 과정에서 소량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이용해 발전을 하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과 달리 핵융합 발전은 더럽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원자력 발전의 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이 위험 수준 아래로 떨어지려면 30만 년이 걸리는 데 반해 핵융합 발전은 방사선을 내뿜는 폐기물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 또 지진과 같은 사고가 발생할 때 핵발전소처럼 핵분열이 멈추지 않아 발전소가 녹아내리는 일이 없이 순식간에 발전이 멈춰버려 안전하다. 핵융합 발전의 원료로 쓰이는 수소는 바닷물에서 무궁무진하게 조달할 수 있다. 원료도 충분하고 더럽지도 위험하지도 않다면 도대체 왜 지금까지 핵융합 발전소를 짓지 않고 원자력 발전에 대한 논란만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통제된 환경에서 핵융합을 발화시키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핵융합 발화란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들어간 에너지 양보다 핵융합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용어이다. 핵융합 발화에 도달하게 되면 발생하는 에너지 중 일부를 핵융합을 일으키는 데 사용하고도 에너지가 남기 때문에 추가 에너지 공급이 없어도 핵융합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사용하는데, 원자폭탄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순식간에 핵융합 발화점에 도달하게 되고 이후에는 핵융합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핵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수소폭탄과 같이 일시에 핵융합을 일으키지 않고 일정한 양의 핵융합 발화를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에 수소폭탄 실험이 성공하면서 핵융합 발전 연구가 시작될 때만 해도 20년 정도 뒤엔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70년이 지난 지금도 핵융합은 여전히 “20년 뒤에야 상용화 가능”한 기술로 남아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핵융합 발전을 사기극이라 매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서 핵융합 발전의 실현이 멀지 않음을 알리는 연구 성과가 발표되어 화제다. 핵융합을 위해 투입한 에너지의 70% 정도를 핵융합 반응에서 얻어냈다는 것이다. 축구장 3개 면적의 실험 장치에서 192개의 레이저를 연필 지우개만 한 작은 표적에 일제히 쏘아 만들어낸 결과라고 한다. 물론 아직 발생시킨 에너지가 투입한 에너지에 비해 적기 때문에 발화점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어떤 핵융합 실험에서도 도달하지 못한 수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 것이고 핵융합 발화에 이르기 위한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성과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KSTAR라는 독자적인 핵융합 연구로를 만들어 핵융합에 필요한 초고온 플라즈마 연구에 투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류가 건설하는 최대 규모의 인공태양이라 불리우는 국제 핵융합 실험로에도 참여하여 첨단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알 수도 없는 연구개발에 연간 천억원 이 넘는 국가 예산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이 성공했을 때 우리가 원천기술을 공유하는 소수의 국가에 속하지 못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 보면 미래 무궁무진한 청정에너지 생산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비용으로 그 정도의 예산을 사용하는 건 아까워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로런스 리버모어 연구소의 성과를 보며 하루빨리 핵융합 발전의 꿈이 이루어져 지구도 구하고 인류도 에너지 걱정 없이 미래를 열어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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