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경기부양 해달라"..여당에 쏟아진 재계 민원

김수헌 기자I 2006.08.09 14:11:34

전경련 등 경제5단체, 여당과 정책간담회
출총제 폐지땐 투자확대규모 첫 언급
`경기부양` 표현 동원..메가톤급 이슈해결 미지수

[이데일리 김수헌기자] 재계가 다시 한번 여당에 `민원`을 쏟아냈다. 기업규제 완화에 대한 주문에 그치지 않았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확대 요구까지 내놓았다. 정부의 거시경제 인식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출총제를 풀어주면 8개 그룹에서만 14조원 이상 투자확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이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등 3군데 경제단체를 돌면서 듣지 못했던 확실한 투자약속이다.

이런 제안과 요구들이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의 `뉴딜`투어 중 네번째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의 정책간담회에서 제시됐다. 

◇오전 분위기 다소 냉랭..청와대發 뉴스때문

이날 오전 분위기는 다소 냉랭했다. 일부 언론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 의장의 뉴딜 행보를 비판했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청와대와의 합의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대통령이 지적했다는 것이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그래서 어차피 뉴딜은 홍보용 이벤트로 그칠 것이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협의해 뉴딜을 구체화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대국민 홍보용도 아니고 선심용도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나 정부와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경제살리기에 여당이 한번 주도적으로 나서 보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기업들에게 멍석을 깔아줄테니 터놓고 이야기해 보라는 `멍석론`도 되풀이했다.

◇재계, `경기부양` 표현동원..정부 경제진단`에 먼저 포문
 
전경련은 우선 현 경기에 대한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분기 이후 경기확장세가 올해 1분기를 정점으로 하강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기확장기는 1년여에 불과하게 된다. 건설경기 침제가 무엇보다 큰 문제라고 전경련은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존의 거시정책 기조를 견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대한 지적도 나왔다. 경기부양과 직결되는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을 오히려 2.8%나 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정수지 적자규모를 4조 2000억원까지 확대하고, 이를 경기부양 목적의 SOC에 투자해야 한다고 전경련은 언급했다.  `경기부양`이라는 표현을 직접 동원했다. 경기부양을 해야 할 단계라는 판단이다. 경기부양이 필요없다는 정부와는 판이한 경기인식이다.

금리에 대해서는 환율하락에 따른 기업채산성 악화나 가계부채 증가지속 등을 감안해 현 수준을 유지해 달라는 희망을 피력했다.

◇출총제  폐지시 투자규모 첫 언급..여당에 화답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한 표현은 `조건없는` 폐지를 촉구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총제를 없애더라도 순환출자규제를 대안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인위적으로 순환출자 해소를 유도할 경우 기업집단 전체의 경영권 및 지배구조가 불안해진다고 비판했다.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할 경우 조세부담이나 주가하락에 따른 주주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그러면서 11대 그룹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까지 내놓았다.  8개 그룹이 출총제를 풀면 향후 2년 내에 14조원까지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는 것이다. 경제단체가 구체적 투자확대 가능규모를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전경련은 그동안 줄곧 제기해왔던 기업관련 법과 제도 개선도 강력하게 요구했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상법개정을 통해 추진중인 이중대표소송과 집행임원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유용한 신주예약권(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수도권 규제완화.."말단지엽적 문제 아니다"

수도권 규제완화 요구도 쏟아졌다.

최근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말단지엽적 문제`로 치부한 것으로 알려졌던 수도권 규제를 풀어줘야 기업투자가 살아날 수 있다고 전경련은 주장했다.

권 부총리는 최근 전경련 하계포럼행사에서 수도권 규제는 말단지엽적 문제가 아니며, 이같은 표현은 본뜻이 잘못전달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지방균형발전에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만 수도권 규제완화를 적극 검토할 수 있을 것이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현단계로선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노사관계도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조속히 입법화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예외없이 시행해 달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일정요건을 갖춘 중소기업의 경우 이를 상당시간 유예해 줄 방침을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 등 해마다 때가되면 단골메뉴로 올라오는 요구도 다시한번 제시됐다.

◇뉴딜, 현실적 가능성 따져보니..곳곳 걸림돌

재계는 이번 뉴딜의 성사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벤트성 행사라는 평가절하 분위기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김근태 의장 스스로 밝혔듯 메가톤급 이슈가 뉴딜 대상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우선 정책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반응이 썩 탐탁치는 않다.

재경부는 기업 경영권 보호가 글로벌스탠더드를 벗어난다고 지난 1년동안 누누이 밝혀왔다. 공정위도 만만치않다. 이대로 여당과 재계가 조성하는 분위기에 당하지많은 않을 기세다.

순환출자대안도 그래서 나왔다. 물론 공정위가 아직은 대안의 무게중심을 순환출자규제쪽으로 완전히 이동시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당으로서는 수도권 규제완화는 지자체들과의 관계악화 가능성도 각오해야 한다. 어차피 지자체를 야당인 한나라당이 꽉 쥐고 있는 마당에 밀어붙여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판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것이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금리결정권을 가진 한국은행 금통위는 물가상승에 주목하고 있다. 물가에 대한 선제적대응을 중시하기 때문에 재계 요구대로 금리동결 희망이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경기부양과 관련한 재정확대 역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부채 증가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치않다. 

올해는 이월이나 불용예산을 줄여 사실상 재정확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정부는 생각하고 있다. 해마다 10조원 안팎의 이월 불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돈을 쓸 곳에 다 쓴다면 사실상 재정집행이 그만큼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여당이 제시한 출총제 폐지나 규제완화, 경제인사면, 경영권 보호가 하나같이 사회적 논란과논쟁을 몰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과감한 투자와 고용확대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회적 합의 도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뉴딜이 물거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재계는 이 대목이 아쉽다는 반응들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투자와 고용확대 약속이라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심하는 모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여당은 정치권과 경제계가 `정경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기브앤테이크`식 거래를 하는 모양새가 국민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열악한 투자여건을 개선해놓고 자연스럽게 기다리면 투자는 늘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업의 생리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