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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극장 무대서 '진수성찬'을 대접합니다

장병호 기자I 2020.07.14 09:29:01

두산아트센터 연극 '식사'
네 창작자의 요리 퍼포먼스
'먹는 일'의 사회적 의미 질문
코로나19로 예상 밖 결말 담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삼겹살(‘1인용 식탁’)과 라면, 족발, 선지해장국(‘궁극의 맛’)에 이어 이번엔 4명의 요리사가 만드는 진수성찬이다. 두산아트센터 기획 프로그램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대미를 장식하는 연극 ‘식사’는 제대로 차린 한 상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공연장인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 들어서면 삼면을 바 형태로 만든 무대가 눈에 띈다. 운이 좋다면 바에 앉아서 공연, 아니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다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물론 객석에 앉아도 공연을 즐기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연극 ‘식사’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의자 위에는 ‘1인용 식탁’ 때와 마찬가지로 고깃집에서 옷이나 가방에 냄새가 배는 걸 막기 위해 제공하는 커다란 비닐봉투가 놓여 있다. 옷차림이 가벼운 여름이다 보니 입고 있는 옷에 냄새가 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오히려 비닐봉투는 앞으로 펼쳐질 공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일종의 안내문처럼 보인다.

공연이 시작하면 네 명의 출연자가 등장한다. 윤한솔 연출과 안데스, 이라영, 조문기 작가로 이들은 이 공연의 창작진이다. 네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은 뒤 곧바로 요리를 시작한다. 메뉴는 매회 조금씩 바뀐다.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메밀로 면을 뽑고, 오븐에 닭을 돌리고, 정성껏 만든 반죽으로 파이를 굽는다.

연극인데 딱히 스토리라 할만한 것이 없다. 당황스럽다면 프로그램북에 적혀 있는 시놉시스가 공연을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미각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지만, 식사(食事)는 공적인 영역에서 적당한 예의와 규칙을 요구하는 경제적, 정치적 활동이다. 다양한 이유들이 뒤섞여 발생하는 ‘식사’라는 사건을 통해 음식과 먹는 행위 안에 작동하는 인간의 ‘욕망’을 살펴본다.” 이처럼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네 사람이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식사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연극 ‘식사’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요리를 만드는 과정만 나온다고 하니 지루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연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틈틈이 배치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거 호프집이었던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 얽힌 사연, 네 출연자가 각자 만드는 요리에 얽힌 에피소드 등이 작은 재미를 더한다.

출연자들은 공연을 위한 리서치 과정에서 참고한 문헌들의 일부를 발췌해 낭독하기도 한다. ‘나쁜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진 록산 게이의 ‘헝거’와 이라영 작가의 대표작 ‘정치적인 식탁’을 비롯해 ‘두부’(박완서),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두 번째 페미니스트’(서한영교), ‘제7대 죄악 탐식’(플로랑 켈리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등이다. 음식에 얽힌 다양한 생각들은 ‘먹는 일’을 뜻하는 식사가 어떻게 사회적 행위가 된 것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공연은 네 사람이 만든 요리로 가득 채운 한 상을 보여주며 끝난다. 원래는 관객이 요리를 함께 맛보는 것으로 끝맺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이들이 만든 요리는 ‘그림의 떡’처럼 멀리서만 지켜봐야 한다. 식사에 감춰진 욕망을 이야기하고자 한 공연은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은 사건과 만나면서 오히려 그 욕망마저도 소중할 수 있음을 전하게 됐다. 공연은 18일까지.

연극 ‘식사’의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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