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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법칙’ 펴낸 황창규 “이건희 리더십 지금도 유효”

김미경 기자I 2023.08.04 12:11:32

‘리더’ 황창규가 꺼내놓는 혁신의 말
황의법칙|308쪽|시공사
작년 말 연세대 7개 강의 엮은 책
오랜 경험과 통찰서 나온 조언
"도전하라, 위험 감수 없인 혁신도 없다"

지난해 가을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전 KT 회장)이 연세대에서 강의하는 모습(사진=시공사 제공).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독자 사업을 하게 해달라.”

2001년 일본의 한 샤부샤부 음식점에서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건넨 말이다. 낸드 플래시 세계 1위 기업이던 일본 도시바가 삼성에 조인트(합작) 벤처 설립을 제안한 직후였다. 이 회장은 “도시바를 앞설 수 있다”는 황 부장의 말을 듣고 독자 추진을 결정했다. 삼성이 낸드 플래시 반도체에서 세계 1위로 도약한 배경이 된 이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른바 ‘자쿠로(음식점 이름) 미팅’이다.

황창규(70) 전 삼성전자 사장(전 KT 회장)은 ‘8할의 도전’이 나를 키웠다고 말한다. 그가 최근 펴낸 책 ‘황의 법칙’(시공사)은 그 결과물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초대 국가전략기획단장(CTO), KT 회장을 지낸 그가 CEO(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난 지 3년여 만이다.

그는 최근 가진 북토크 현장에서 출간 배경에 대해 “조직에서 만들어 준 명함을 반납하며 다짐한 게 두 가지가 있다. 기억하는 것과 돕는 것”이었다며 “다음 세대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야겠다는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펴낸 책”이라고 했다.

모든 혁신은 리스크에서 탄생

책 집필은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의 제안으로 출발했다. 후배 세대를 위한 재능기부 형태로, 지난해 일곱 차례 강연한 대학 강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황 전 사장은 “대한민국은 짧은 시기에 경제성장을 이룬 유일한 나라”라면서 “현장에서 경험한 기억과 성취, 성공을 기억으로 남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후배들이 일을 하는데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저서에는 그가 반도체와 5G(5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시장을 이끌며 ‘세계 최초’ 성과를 일궈낸 스토리를 담았다.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위험감수), 위기의 대응, 혁신을 이루는 경영자의 자세 등 그가 의도했던 혁신의 신념과 방법들이다. 책 제목은 2002년 국제반도체학술회의에서 그가 발표했던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에서 따왔다.

황 전 사장은 자쿠로 미팅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었던 것 같다”고 운을 뗀 뒤 ‘위험을 감수하는 (risk taking) 정신’을 언급했다. 그는 “모든 혁신은 리스크에서 탄생한다”며 “개인이든 기업이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선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굉장히 겁 납니다. 저도 그랬어요. 두 번째는 즐겁고, 세 번째 이후부턴 습관적으로 되더라고요. 같은 뜻이 모이면 그 힘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거죠.”

물론 사업 성과의 확신은 있었다고 했디. 그는 “당시 이건희 회장에게 역제안이 가능했던 건 곧 모바일 시장이 열릴 것이고, 이로 인해 플래시메모리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며 “임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생산 준비 작업을 마친 상태였다. 이것이 매우 주효했다”고 기억했다.

리더의 역할…겁없는 도전 가능케 해야

리더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선대 회장의 리더십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말로 ‘위임’을 뜻하는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수차례 언급했다. 업무 수행을 위해 리더(관리자)가 조직원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전 사장은 “이 회장의 위임을 통해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며 “이 회장에게 배운 최고의 경영철학”이라고 했다. 그가 경험한 이 회장의 경영 알고리즘은 ‘위임→경청→숙고→결단’으로 요약된다. 그는 “결정은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일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많이 묻고 많이 듣는다. 앞을 예측하는 데이터와 근거가 여기서 쌓인다”며 “겁 없는 도전을 가능케 하는 것도 리더의 덕목”이라고 했다. 그는 ‘천재 1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이건희 회장의 ‘천재경영론’에 따라 1989년 삼성전자에 영입된 대표적 인재이기도 하다.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전 KT 회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북토크 이후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현실에 안주하면 ‘나’ 알 수 없어

책에는 임원 제안을 마다하고 실무자로 삼성에 입사했다거나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와의 담판 등의 일화도 공개한다. KT 회장 연임에 성공한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5G 시범 서비스에 성공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날 현장에서는 ‘지금의 삼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삼성전자가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위기라는 말이 등장하자 앞다퉈 나온 질문들이다. 이에 황 전 사장은 “삼성을 떠난 지 꽤 돼 지금의 삼성을 알 수는 없다”면서도 “예전보다 더 많은 ‘인재풀’을 보유하고 있고, 기술 개발의 속성과 노하우, 돈도 있다. 오히려 경쟁자와 격차를 벌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곧장 ‘도전’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저는 ‘워라밸’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도전하지 않으면 편할 거 같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현실에 안주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위기의 가능성은 더 커지죠. 부디 도전해 보세요.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가능성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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