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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법 80조는 금융기관의 신용공여가 크게 위축되는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행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영리기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0년 5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회사채·CP(기업어음) 매입기구(SPV)를 설립해 정부의 보증을 받아 한은이 SPV에 자금을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한은법 80조의 활용 사례다.
한은은 한은법 80조를 활용해 비은행에 대해서도 신속한 자금 지원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은 관계자는 “비은행을 80조의 영리기업으로 보고 (유사시) 자금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규정 개정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이 필요하다.
최근 한은은 비은행에 대한 감독 강화와 관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73주년 한은 창립 기념사를 통해서도 “한은법에서 금융기관이라 함은 은행만을 의미했으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 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져왔고 은행과의 자금거래 확대로 은행-비은행간 상호 연계성도 증대됐다”고 밝혔다. 이어 “비은행의 중요도와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대됐기에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원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 감독기관과의 정책 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뱅크런 사태로 파산에 이르렀던 SVB와 우리나라 비은행의 규제 환경이 비슷하다는 게 한은의 관측이다. 실제로 이날 발표된 금융안정보고서에선 비은행예금취급기관과 관련 “은행과 유사한 여수신 업무를 주요 업무로 취급하고 있지만 지역 서민 금융 등 보다 제한적인 목적으로 설립돼 자금조달 및 운용 등에서 은행과 상이한 규제를 받는다”며 “미국 SVB는 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 등이 적용되지 않은 중소은행으로 우리나라의 비은행과 규제 환경이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인터넷은행, 비은행 모두 예금이 갑자기 인출되더라도 유동성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지만 그러한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해 한은이 비은행권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저축은행, 상호금융조합 등 비은행은 중앙회의 양호한 유동성 지원 여력을 고려할 때 유동성 부족과 같은 잠재 리스크가 현재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도 “비은행의 비대면 경로를 통한 수신이 증가하면서 예금 유출입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저축은행, 상호금융조합 등 수신을 기반으로 하는 비은행의 경우 부실 우려 부각시 건전성 악화는 물론 수신 이탈 가능성도 높아져 안정적인 수신구조를 유지하고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도록 이들 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국제기구에서도 비은행에 대한 감독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17년말 비은행 규제 체계에 대한 동료 평가에서 중앙회에 대한 감독 강화를 권고 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4월 글로벌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비은행 금융중개 기능이 중요해짐에 따라 필요시 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 대상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비은행까지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대상 기관에 대한 적절한 감독 필요성, 적격 담보의 획대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다만 한은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비은행을 구분해 이들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기보다 비은행권 전반에 대해 유사시 유동성을 즉각 공급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