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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 개별 신용등급 받아라'..증권가 "어이없네"

김인경 기자I 2015.01.26 10:40:39

내달 4일 금융규제개혁방안 개정안 시행
"현행 기업평가와 등급 다를 가능성 없어"..탁상공론 지적
업계 의견 취합 늦은 금투협에 포화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다음 주부터 개별 파생결합사채들이 신용등급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나마 잘 되는 주가연계 파생결합사채(ELB)에 발목이 잡힌 셈. 금융투자업계는 실효성이 없는데다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표한 ‘금융규제 개혁방안’ 등에 대한 후속 조치로 다음 달 4일부터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 중 중 일부 안건이 시행된다.

이제까지 판매사의 계열사가 발행한 사채권이나 자산유동화증권, 기업어음증권 등 고위험 채무증권 중 투자적격등급을 받지 못한 상품을 권유하면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됐다. 그러나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계열사뿐만 아니라 판매사(증권사)가 발행한 고위험 채권 역시 투자 적격등급을 받아야만 판매할 수 있다.

이 안은 금융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11월 4일 공지됐고 3개월 후인 다음 달 4일부터 효력을 갖게 된다.

금융위가 고시한 제2014-33호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안 중
이에 대해 증권사들은 단단히 ‘뿔이 난’ 상태다. 예탁결제원과 교보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출시된 공·사모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는 무려 504건. 지난 8월 발행건수보다 35.8% 증가하는 등 최근 폭발적인 성장을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퇴직연금 사업자 등 법인용 ELB를 제외하고 개인 투자자를 위한 ELB는 모두 등급 평가를 통해 투자 적격 등급 이상을 받아야 판매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증권사 파생상품 관계자는 “최근 기대수익률(쿠폰)도 하락하고 있는데 신용평가사에 수수료 지급까지 하게 될 경우,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잘 되는 상품이 나왔는데 태클을 거는 격”이라고 말했다.

사모ELB의 경우, 사흘 정도 청약을 받는 공모 ELB와 달리 청약과 마감을 같은 날 하는 경우가 많다. 신평사가 등급을 매기게 될 경우 하루 이틀의 시간이 지연되며 쿠폰이 변경될 수도 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하면 원금을 99.9% 보장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내놓는 방법밖에 없다”며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하에 말도 안 되는 제도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현재 ELB에 적용되는 증권사의 기업신용평가(Issuer Rating) 등급과 앞으로 받아야 하는 개별 ELB 상품 등급이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ELB는 자산의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해 원금을 보호하고 극히 일부분만 코스피200나 HSCEI 등 고지한 기초자산에 투자, 수익률을 만드는 상품이다. 증권사가 원금을 보호할 수 있을지 여부가 중요한데, 이는 이미 기업의 신용평가에 반영돼 있는 것.

실제로 현재 외부 판매(펀드)를 위해 등급을 받은 ELB의 평가서를 보면 대다수 ‘기업 신용등급에 준하는 신용등급’을 근거로 개별 상품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최근 5개월간 ELS 및 ELB발행현황 (단위:억원, 출처:예탁결제원, 교보증권)
신용평가사도 마냥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국내 3개 신평사 모두 ELB 등급을 매기는 증권 담당 연구원이 1~2명 내외라 모든 상품을 검토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게다가 수수료 역시 일반 회사채보다 낮아 수익원으로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수수료를 정액제로 매길지, 건당 별도로 지급할지 등 세부 방안도 전혀 정해지지 않아 신평사간 영업 경쟁만 가열될 수 있다.

반발이 거세자 지난 21일 금투협은 신평사가 참관한 가운데 증권사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매월 말께 평가를 한 후, 한 달간의 발행물에 동등한 등급을 적용하는 ‘일괄평가제’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미 은행이나 카드, 캐피탈 등의 업체에 적용되고 있어 법적 근거도 있다는 평가다.

또 증권사들은 사모ELB와 관련해서도 월별 혹은 분기별 한 번의 일괄평가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도 시행 열흘도 남기지 않고 이렇다 할 방향이 잡히지 않은 만큼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금융투자협회가 업계의 의견을 취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투협은 지난해 11월 4일 ‘금융투자업규정 일부 개정규정안’ 공고가 나온 뒤 두 달이 지난 이번 달 각 증권사 파생상품 관계자에게 이를 알렸다. 이어 지난 16일 증권사에 ‘금융투자업규정 개정 관련 회의자료’라는 이름의 메일을 보냈고 세칙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자 지난 21일 뒤늦게 의견 청취에 나섰다.

금투협 측은 “일괄평가제 등 업계와 논의한 안을 금융감독원과 논의 중”이라며 “제도 시행 전에 확정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모ELB와 관련해서는 이달 중 한 번 더 증권사와 모임을 갖기로 해 다음 달 시행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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