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정두언, 과거 극단적 시도 고백.."불길에 갇혀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

박지혜 기자I 2019.07.17 09:02:03
[이데일리 박지혜 기자]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심리 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16일 결국 세상을 등졌다. 향년 62세.

정 전 의원은 지난해 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4선 국회의원 당선에 실패한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악몽을 꾼 건가. ‘여기가 어디지’ 싶더라고”라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찾아오니까 정말로 힘들더라고. 목을 맸으니까. 지옥 같은 곳을 헤매다가 눈을 떴어. 한동안은 여기가 어딘지 가늠이 안되더라”라고 토로했다.

‘왜 극단적인 행동을 했던 건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전 의원은 “인간이 본디 욕심덩어리인데, 그 모든 바람이 수포로 돌아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겠구나’ 생각이 들 때 삶의 의미도 사라진다. 내가 이 세상에서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거다. 급성 우울증이 온 거지”라고 답했다.

그는 또 “사실 (2016년 총선) 낙선 자체는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잖나. 친박의 행태와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으니 (보수당이) 잘 될 리 없었다”라며 “문제는 낙선 뒤였다. 고통에서 피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으니 자살을 택한 거야. 14층 건물에 불이 나서 불길에 갇힌 사람이 뛰어내리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일이 있고 나서 병원을 찾았다. 그냥 있으면 또다시 스스로 해칠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정 전 의원은 구치소에서 출소한 뒤의 심경에 대해 “세상에 나오니까 점점 도루묵이 되더라(웃음). 나를 기다리는 건 배신이었다. ‘이제 정두언은 끝났구나’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평온이 깨지고 분노와 증오가 서서히 생겨났다”고 떠올렸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인근 북한산 자락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 전 의원이 지난 2010년 2월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신임당직자 조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한 차례 극단적인 시도를 한 후 “치유하는 삶을 배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끝내 마지막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비극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정 전 의원은 “인터넷 강의로 올해(2018년) 초 심리 상담사와 분노조절장애 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앞으로 임상 수련도 할 거다. 칠십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카운슬러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며 “카운슬링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도 스스로 카운슬링이 된다. 나도 치유하고 남도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 나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본 사람이 드물지 않나. 그런 만큼 상담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지내온 정치 인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정치란 결국 거짓과 기만, 위선의 세계다. 지금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라며 “그런데 인간이란 게 참 어리석다. ‘불 옆에 가까이 가면 덴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데어 봐야 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정 전 의원은 서울시 부시장을 지내다가 2004년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총선까지 서울 서대문을에서 내리 당선됐으나 20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낙선 이후 라디오뿐만 아니라 종합편성채널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과 패널로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마포에 음식점을 개업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왕의 남자’로 불렸던 정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에 앞장선 인물이기도 하다.

정 전 의원은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3년 1월 법정 구속돼 10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2014년 11월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유족의 뜻을 존중해 정 전 의원의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유서의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빈소는 17일 오전 9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9시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