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더기 對러시아 제재후 "대화로 풀자"…바이든式 당근과 채찍 전략?

방성훈 기자I 2021.04.16 09:45:34

美, 정상회담 제안 이틀만에 무더기 對러시아 제재
32개 기관·개인 제재…美주재 러 외교관 10명 추방 등
러, 즉각 반발하며 "대가 치를 것"…보복 조치 예고
바이든 "푸틴과 정상회담 논의중…협력 여지 남아있어"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의 미 대통령 선거 개입, 사이버해킹 등에 대응해 첫 제재에 나섰다. 러시아 외교관 10명을 추방하고, 32개 기관과 개인을 제재 대상 명단에 포함시키는 등 무더기 제재를 단행했다. 이번 제재는 바이든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3국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전해진 소식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미 정부는 필요한 경우 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서도 우선은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러시아는 제재 조치에 강력 반발하며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美, 정상회담 제안 이틀만에 무더기 對러시아 제재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을 통해 러시아 기관 16곳과 개인 16명을 제재 대상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러시아 정보국 요원을 포함한 10명의 워싱턴 DC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기로 했다.

제대 대상에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 병합 및 이후 탄압에 지속 관여한 8명, 2016년 미 대선 개입 혐의로 제재를 받은 러시아인터넷연구소와 유착한 파키스탄 국적자 6명과 기업 4곳, 러시아 정보당국의 사이버해킹을 지원한 6개 기업, 2020년 미 대선 개입 및 허위사실 유포에 연루된 러시아 정부·정보당국 관계자 등이 포함됐다.

행정명령에는 러시아 중앙은행과 재무부, 국부펀드가 발행하는 신규 채권을 미 금융기관이 매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조치는 6월14일부터 발효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초 러시아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와 관련해 러시아 개인과 기관을 제재했으나, 미 대선개입 의혹 및 사이버해킹과 관련해 제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제3국 정상회담을 제안한 지 이틀 만에 이뤄진 것이다.

백악관은 행정명령에 대해 미 대선개입, 사이버해킹, 기타 러시아의 악의적 활동에 따른 보복 조치라고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CNN방송에 “바이든 대통령이 오늘 발표한 것은 사이버해킹과 미 대선 개입을 포함한 러시아의 해로운 행위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비례적 조치”라고 말했다.

백악관도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러시아가 불안을 야기하는 국제적 행동을 지속하거나 확대할 경우, 미국은 전략적·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트위터에 “우리는 러시아가 적대적 행위에 대해 계속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적어 향후 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우선은 항의 차원에서 존 설리번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를 외무부로 조치하고, 조만간 미 제재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의) 그러한 공격적 행동은 양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마땅히 단호한 반격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은 양국 간 관계를 악화시킨데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차례 양국 간 대결 수위를 위험하게 하는 미국의 적대적 행보의 결과에 대해 경고해 왔다”며 “현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푸틴과 정상회담 논의중…협력 여지 남아있어”

이번 제재는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3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제3국 정상회담을 제안한 지 이틀 만에 이뤄진이라 미국의 숨은 의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 정부의 대러시아 제재가 폭은 넓지만 오히려 러시아와의 갈등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러시아담당 국장을 지낸 토머스 그레이엄 키신저어소시에이츠 수석고문은 “미 정부가 무더기 제재를 단행했지만 제재 대상이 대부분 미국에서는 활동하지 않고 있고, 신규 채권 매입 금지 조치에 따른 재정적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의) 의도는 (러시아와) 갈등 수준을 낮추는 것”이라며 “양국은 여전히 적대적인 관계지만 예측 가능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제재 이후 가진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미국 민주주의에 계속 간섭하기로 한다면, 미국은 이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 외국 권력이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용납할 수 없었다”고 경고하면서도 러시아와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더 강한 제재를 가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우리 두 사람의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 양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의 긴장 고조와 관련해서도 “지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을 완화할 때”라고 강조한 뒤 “미국과 러시아는 협력할 여지가 남아 있다.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대해 ‘전략적 안정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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