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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美人을 만나다

오현주 기자I 2011.10.14 13:39:19

간송미술관 `풍속인물화대전`
혜원·단원 등 100여점
딱 2주간 가을 정기전
화풍의 변천사 한눈에

▲ 풍속화의 시조로 꼽히는 관아재 조영석의 `촌가여행`(24.4×23.5cm)(사진=간송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부엌 뒤 감나무 아래 한 아낙이 절구질에 한창이다. 나무에 줄을 매 잘 펴서 널어둔 남정네 저고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단출한 초가에 올린 볏단이나 얹은머리를 한 중년 여인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사실적이다.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이 그린 `촌가여행(村家女行)`. 내외가 심한 조선 중기 사대부가 여성을 그리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멀찍이서 잡아낸 이 여성풍속화는 이후 조선 후기 꽃피우게 된 조선풍속인물화, 그 절정의 시작점이다.

한국미술사의 보루로 평가받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조선 거장들의 풍속화와 인물화의 변천을 한자리에서 더듬는다. 봄과 가을 한 해 두 번만 문을 여는 미술관의 올 가을정기전에서다. 500여년 동안 조선왕조가 배출한 52명 화가들의 풍속인물화를 망라했다. 현동자 안견(1418∼?)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를 아우르는 100여점이 걸린다.

전시는 곧 한 줄로 꿰뚫을 수 있는 문화사이기도 하다. 시대 이념이 좌지우지한 회화사의 흐름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게 한 구성 덕이다.

중국 주자성리학적인 문물제도가 정비되는 세종 때. 중국의 남·북방 양대 화풍이 조선화단에 뿌리 내리게 된다. 양끝에는 인재 강희안(1418∼1465)과 안견이 있었다. 강희안은 묵법의 남중국풍 화법을, 안견은 필묘의 북방화법을 화원 화풍으로 정착시켰다. 이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산수·인물 등 따라하지 않는 중국 그림이 없었고 하물며 소를 그려도 우리에겐 없는 중국 물소만 그려냈던 거다.

조선 화풍이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은 겸재 정선(1676∼1759)에서다. 이황과 이이가 발전시킨 조선성리학 바탕의 진경풍속화풍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조선 의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인물화들이 등장하게 됐다. 낚시꾼과 나무꾼의 대화장면으로 세상의 일리를 담아낸 정선의 `어초문답(魚樵問答)`에선 지게가 최초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정선의 한동네 10년 후배였다는 조영석이 풍속화로써 인물화와 보조를 맞췄다. 
▲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45.4×114.0cm).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에 들어 있다(사진=간송미술관).
대부분 사람들이 풍속화하면 떠올리는 서당·씨름판 풍경이나 기생과 어울리는 선비의 풍류가 등장하는 것은 진경시대가 마무리되는 단계에서다. 단원 김홍도(1745∼1806), 긍재 김득신(1754∼1822), 혜원 신윤복(1758∼?) 등 걸출한 화원화가들이 조선풍속화풍을 절정의 시기로 올려놓는다.

이후 김정희가 앞장선 고증학의 문호가 열리자 중국 청조문인화풍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오원 장승업(1843∼1897)은 김정희를 벗어던진 인물로 꼽힌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중국화풍을 모방했기 때문. 하지만 분별없이 밀려드는 청대 말기의 인물화풍은 조선 말기 혼란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때를 맞춰 조선풍속화의 화려한 시절도 저물어갔다.

이번 전시에선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급 작품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낸다. 잊지 못할 여인을 그렸다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3년 만에 다시 나오고, 단오날 목욕하는 여인네를 훔쳐보는 동자승을 그린 `단오풍정`을 비롯해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월하정인` `주유청강` 등 신윤복의 명작 16점이 함께 공개된다. 달빛 아래 생황을 부는 예인을 묘사한 `월하취생`, 봄날 버드나무 위 꾀꼬리 소리에 넋을 빼앗기는 선비의 춘정을 그린 `마상청앵` 등 김홍도의 7점도 걸렸다.

관람료는 무료. 16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이다.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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