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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의 보루로 평가받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조선 거장들의 풍속화와 인물화의 변천을 한자리에서 더듬는다. 봄과 가을 한 해 두 번만 문을 여는 미술관의 올 가을정기전에서다. 500여년 동안 조선왕조가 배출한 52명 화가들의 풍속인물화를 망라했다. 현동자 안견(1418∼?)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를 아우르는 100여점이 걸린다.
전시는 곧 한 줄로 꿰뚫을 수 있는 문화사이기도 하다. 시대 이념이 좌지우지한 회화사의 흐름을 차근차근 짚을 수 있게 한 구성 덕이다.
중국 주자성리학적인 문물제도가 정비되는 세종 때. 중국의 남·북방 양대 화풍이 조선화단에 뿌리 내리게 된다. 양끝에는 인재 강희안(1418∼1465)과 안견이 있었다. 강희안은 묵법의 남중국풍 화법을, 안견은 필묘의 북방화법을 화원 화풍으로 정착시켰다. 이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산수·인물 등 따라하지 않는 중국 그림이 없었고 하물며 소를 그려도 우리에겐 없는 중국 물소만 그려냈던 거다.
조선 화풍이 전환기를 맞게 된 것은 겸재 정선(1676∼1759)에서다. 이황과 이이가 발전시킨 조선성리학 바탕의 진경풍속화풍이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조선 의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인물화들이 등장하게 됐다. 낚시꾼과 나무꾼의 대화장면으로 세상의 일리를 담아낸 정선의 `어초문답(魚樵問答)`에선 지게가 최초로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에 정선의 한동네 10년 후배였다는 조영석이 풍속화로써 인물화와 보조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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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김정희가 앞장선 고증학의 문호가 열리자 중국 청조문인화풍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오원 장승업(1843∼1897)은 김정희를 벗어던진 인물로 꼽힌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중국화풍을 모방했기 때문. 하지만 분별없이 밀려드는 청대 말기의 인물화풍은 조선 말기 혼란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때를 맞춰 조선풍속화의 화려한 시절도 저물어갔다.
이번 전시에선 값을 매길 수 없는 국보급 작품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낸다. 잊지 못할 여인을 그렸다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3년 만에 다시 나오고, 단오날 목욕하는 여인네를 훔쳐보는 동자승을 그린 `단오풍정`을 비롯해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월하정인` `주유청강` 등 신윤복의 명작 16점이 함께 공개된다. 달빛 아래 생황을 부는 예인을 묘사한 `월하취생`, 봄날 버드나무 위 꾀꼬리 소리에 넋을 빼앗기는 선비의 춘정을 그린 `마상청앵` 등 김홍도의 7점도 걸렸다.
관람료는 무료. 16일부터 30일까지 보름간이다.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