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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싸이월드·블로그·밴드 성공시킨 ‘스타 기획자’의 VC 변신

김호준 기자I 2020.02.16 14:47:32

싸이월드·밴드 성공시킨 ‘스타 기획자’ 이람 TBT 대표
네이버가 990억 출자한 벤처투자사(VC) TBT 설립
해외로 뻗어나가는 토종 스타트업 발굴·육성에 주력
"네이버에서 배운 ‘고객집착’ 정신, 스타트업에 전수"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람 TBT 대표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기획자라는 직업은 유효기간이 있죠. 나이가 들수록 젊은 창업자들을 돕는 조력자 역할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람(47) TBT 대표는 한국 IT 업계에서 ‘스타 기획자’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초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싸이월드를 성공시킨 데 이어 지금도 수천만 명이 사용하는 네이버 블로그와 밴드를 연이어 기획했다. 2016년 네이버 모바일 분야 자회사 ‘캠프모바일’ 대표를 끝으로 업계를 떠난 이 대표는 2018년 창업투자회사(VC) ‘TBT’(THOUGHTS BECOME THINGS)를 설립하며 벤처투자가로 돌아왔다. 그는 “기획자 생활을 딱 20년 했으니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 싸이월드·밴드 만든 ‘스타 기획자’의 VC 변신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1999년 싸이월드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획자로서 커리어를 쌓았다. 싸이월드 핵심 서비스였던 ‘미니홈피’와 일종의 가상화폐인 ‘도토리’를 고안하며 ‘싸이열풍’을 주도했다. 2003년에는 네이버에 합류, 지금도 포털·모바일에서 수천만 명 이용하고 있는 네이버 블로그와 밴드를 개발했다.

2013년 네이버가 모바일 분야 자회사 ‘캠프모바일’을 설립하자 초대 대표를 맡으면서 네이버의 모바일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캠프모바일에서는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서비스하는 ‘스노우’를 만들며 3년 만에 3억 명이 넘는 글로벌 이용자를 확보했다. 네이버가 포털·모바일을 아우르는 IT 대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숨은 주역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기획자로 승승장구하던 이 대표는 2016년 업계를 떠났다. 그는 “이용자들의 니즈를 잘 알아야 서비스 기획을 잘 할 수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계속 필드에서 뛰는 게 회사에 민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20대에 싸이월드를 만들었고, 30대에는 네이버에서 블로그와 카페를 만들고, 40대에는 캠프모바일에서 밴드를 키웠지만 이제는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2년의 재충전 시간을 가진 이 대표는 2018년 6월 TBT를 설립했다. TBT는 벤처업계에서는 신생 VC에 속한다. 네이버와 한게임 등 IT 업계에서 일하던 전문가들을 모으고 총 1100억원 펀드를 결성한 뒤 스타트업 발굴·육성에 뛰어들었다. 1100억원 펀드 중 네이버가 990억원을 출자했다.

지금까지 투자하고 육성한 스타트업은 아직 20여 개에 불과하지만, 모빌리티나 에듀테크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신생 기업들이 적지 않다. 모빌리티 분야 규제샌드박스 1호로 선정된 ‘반반택시’와 공단기·경단기 등을 운영하는 ‘에스티유니타스’가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신생 VC이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늘 다르게 사업을 하려고 노력한다”라며 “IT 업계에서 서비스 기획이나 재무, 법무 등 다양한 경험을 해본 이들이 많다는 것이 TBT의 특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람 TBT 대표
◇“한국에서 잘 하는 스타트업, 글로벌에서도 통한다”

TBT의 투자원칙은 간단하다. ‘로컬 탤런트, 고잉 글로벌’(Local Talent, Going Global). 한국이 가장 잘 하는 아이템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는 스타트업들에 투자한다는 뜻이다.

그는 지금까지 투자한 스타트업 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으로 에스티유니타스를 꼽았다. 에스티유니타스는 수능부터 공무원, 외국어 교육까지 아우르는 교육전문기업으로, 2018년 매출 4000억원을 돌파하며 업계에서 가장 유력한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미국 교육업체 ‘프린스턴리뷰’를 인수하며 한국의 교육 콘텐츠를 미국에 전파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대표는 “한국은 사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노하우가 전 세계 어느 곳보다 뛰어나다”며 “그런 파괴력을 잘 알고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네이버에서 배운 ‘고객집착’ 정신을 스타트업에도 이식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서비스 수준이 늘 높아야한다고 기획자들을 훈련시킨 게 네이버”라며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이런 ‘고객집착’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창업자의 가장 중요한 소질로 ‘총기’와 ‘똘끼’를 꼽았다. 두 가지를 겸비한 창업자가 자신만의 ‘인생 아이템’을 골랐을 때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행을 쫓기보다 창업자 스스로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사업으로 연결할 때 고객도 얻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VC로서 자신의 역할을 ‘센서’로 표현했다. 역량이 뛰어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전통기업들과 연결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국내 유니콘 기업이 11개나 탄생하고, 벤처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돌파하는 등 벤처생태계가 활성화하고 있는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더 많은 창업가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고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리 창업 환경은 아직 안전지향 쪽에 쏠려 있는 듯하다”며 “몇 번이고 실패해도 안전망으로 다시 일어나고, 결국은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한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 답답한 우리 경제를 뚫고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TBT 이람대표는

△1973년생 △싸이월드 기획팀장 △네이버 커뮤니티/UCC테마 매니저 △네이버 모바일전략 부사장 △캠프모바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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