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현장에서]세상에 없는 혁신품 개발하고 1년째 못파는 사연

류성 기자I 2019.03.17 14:25:28

세계 최초 주사바늘없는 주사기 개발,양산체제 구축
식약처 안정성 이유로 판매허가 1년째 내주지 않아
개발한 의료기기업체는 자금난 심화로 존립위기
업계 "주사기를 신약처럼 임상시험하라는 건 부당"

[이데일리 류성 기자] “이렇게 힘들줄 미리 알았다면 이 사업을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평가받는 제품을 개발해놓고도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어 너무도 답답하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주사바늘이 없는 주사기를 개발한 전진우 JSK바이오메드 대표의 하소연이다. 전대표는 지난해 상반기 이 제품을 본격 판매하려고 대전에 연간 3만개를 생산할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공장까지 완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
길어야 한두달이면 따낼줄 알았던 판매허가를 1년이 다 되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지못해 결국 이 회사는 큰 위기를 맞고있다. 지난 4년간 제품 개발에 30여억원을 쏟아붓다보니 사업자금은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제품판매가 이뤄지지않아 현금유동성에 위기가 닥친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허가를 받지 못하다보니 해외 시장개척도 난관에 빠져있다. “자국에서 판매허가도 받지못한 제품인데 어떻게 믿을수 있겠느냐”는 게 미국,유럽 정부와 기업들의 반응이다. 여기에 제품 판매가 시작되지 않으면서 추가 투자유치도 어려운 처지다. 투자자들이 제품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면서 자금투입을 꺼리고 있어서다.

이 회사가 개발한 주사 바늘없는 주사기 ‘미라젯(사진)’은 레이저 펄스 에너지를 이용해 노즐안에 있는 물압력을 높여 약물을 피하속으로 주입하는 혁신적인 제품이다.세상에 없는 신제품이다보니 마땅한 경쟁상대도 없다. 그나마 대체 제품을 꼽는다면 공기압 주사기가 있다.

하지만 공기압 주사기는 피하에 투입하는 약물의 양을 조절하기 어렵고, 피하 깊숙하게 투여하는 단점이 있어 제품경쟁력에서는 이 상품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게 회사측 설명이다.

게다가 이 제품은 레이저를 활용해 초당 40회를 분사할 정도로 속도가 빨라 환자가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차별점을 갖고있다. 피부손상이 거의 없다는 것도 강점이다. JSK는 이 제품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특허를 각각 1개씩 확보하면서 기술 혁신성을 공인받았다.

이 회사는 해외 시장은 제외하더라도 국내 시장규모만 최소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전대표는 “주사바늘에 찔리는 것을 대부분 환자가 꺼려하기 때문에 병,의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을 것이다”고 자신한다.

이 제품을 시험해본 허창훈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주사바늘이 없이도 소량의 약물을 진피층에 빠른 속도로 주입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제품이다”며 “이 제품은 그동안 시장과 환자가 원했던 기능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어 시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평가했다.

미라젯 사례는 한국 제약·바이오 관련 산업이 현재 처해있는 사업환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인 제약,바이오 산업을 집중육성하겠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천명하고 있지만 정부 관련부처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전혀 없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한 제약업계 회장은 “대통령부터 관계부처 장관들까지 나서 제약산업을 키우겠다고 강조하지만 기업들은 피부로 개선됐다고 느끼는게 전혀 없다”며 “희망고문의 전형이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혁신제품을 개발,양산체제까지 갖추고도 정작 판매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것도 식약처의 뿌리깊은 ‘규제우선주의’가 여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식약처는 “이 제품은 레이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판매허가를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식약처는 정작 안전성 검증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업체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규모가 영세한 JSK와 같은 의료기기 벤처로서는 식약처의 무성의한 대응에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

의료기기 업계는 “가장 단순한 의료기기로 분류되는 주사기에 대한 판매허가를 내주는데도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하다며 거절하는데 하물며 이보다 더 복잡한 의료기기는 어떻겠느냐”며 반문한다.

진대표는 “주변에서 의료기기 벤처를 하는 분들 가운데 국내에서 제품허가를 받지못해 아예 미국이나 캐나다로 본사를 옮겨 사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국내업체들이 다국적 의료기기 업체들이 이미 시장에 내놓은 제품을 본떠 만들어 사업을 하는 것도 자체 개발을 하게되면 정부로부터 제품허가를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고 토로했다.

최근에야 식약처도 주사기 판매허가를 받기위해 임상시험까지 거쳐 안전성을 증명하라고 업체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해법을 찾고있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이 제품에 대한 판매허가를 내주는데는 여전히 난색을 표시한다.레이저 주사기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여서 안전성 입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기본적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미라젯 사태를 보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할 보건복지부,식약처에게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빌미로 확보한 ‘규제’라는 기득권을 완화하는 모습을 보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그리고 현장 공무원들의 ‘규제우선주의’가 ‘기업 최우선주의’로 바뀌지 않는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세는 더딜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