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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노텔의 몰락..주가 '1/10000'까지 떨어져

김경인 기자I 2009.01.15 10:34:24

노텔, 파산보호 신청..구조조정 통해 부활 모색
경쟁업체에 `기회`..통신장비업계 재편될 듯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한 때 캐나다 최대기업으로 토론토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35%를 독차지했던 통신 장비업체 노텔 네트웍스가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다. `대마불사` 신화에 종말을 고한 경제위기의 강력함이 또 한번 증명된 셈이다.

2000년 `IT거품` 붕괴를 비교적 잘 견뎌냈다는 평가를 받아 온 노텔의 결정에 시장은 충격을 받았고, 관련 업체들의 주가까지 일제히 폭락했다. IT업계가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노텔의 위기가 통신 장비업계의 자연적인 구조개편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란 기대감도 존재한다. 특히 최근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시스코시스템즈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 노텔, 파산보호 신청..`구조조정 시간 벌기`

노텔 네트웍스는 14일(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파산법 챕터11 하의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캐나다에서 역시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유럽 계열사들도 조만간 유사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텔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과도한 비용과 채무부담을 해소해 효과적으로 회사를 구조조정하고 효율적이고 시의적절하게 전략적 포커스를 좁힐 시간을 갖기 위해 파산보호 신청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 상황이 많이 나쁘지는 않다는 일종의 해명.

그러나 노텔은 IT버블 붕괴 이후 10년 간 꾸준히 후진해왔고, 금융위기로 그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특히 2004년 회계부정 스캔들로 사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위기가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캔들 이후 새로 노텔을 이끌게 된 마이크 자피로브스키 최고경영자(CEO)는 강력한 구조조정 노력을 경주해왔고 지난 4년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지난 11월에 34억달러의 3분기 적자를 발표한 이후 전 직원의 5%인 1300명을 해고했으며, 임금을 동결하고 외부 용역 등을 크게 줄였다. 부동산 포트폴리오 등 자산도 전부 재검토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경기후퇴(recession)의 파고를 넘기에는 역부족. 금융위기와 경기후퇴로 소비자들이 통신용품 구매를 줄이고 주요 기업들 또한 IT투자를 미루거나 취소하면서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이로인해 38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자산매각을 시도했으나 때마침 악화된 시장상황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15일 지불해야 할 대출이자 1억7000만달러를 못 갚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 화려했던 과거는 눈처럼 녹았지만

노텔은 지난 2000년 토론토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35%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캐나다 최강 기업이었다. 당시 연간 매출이 300억달러 수준이었으며 9만3000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시가총액은 미화로 약 3000억 달러까지 이르렀었다. 캐나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 캐나다의 연기금들이 한 회사 주식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10% 이상을 보유하지 못한다는 규정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860달러, 토론토증권거래소에서 1100캐나다달러(주식합병 반영가)를 기록했던 노텔의 주가는 현재 각각 21센트, 15캐나다센트까지 급락한 상황이다.

▲ 노텔 네트웍스 1년 주가 추이 (출처: 노텔 홈페이지)

캐나다 정부가 즉각적으로 "노텔의 파산보호 탈출을 돕기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선 점은 그 만큼 노텔이 캐나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큼을 방증한다. 캐나다 정부는 노텔에 3000만캐나다달러 단기금융을 제공키로 했다.

노텔이 파산보호를 통해 그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을 갖고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DSAM컨설팅의 던컨 스튜어드 연구원은 "노텔은 단기적으로 현금을 가지고 있지만 중기적 관점에서 볼 때 증가하는 우려를 해소할 만큼 충분한 현금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현재 노텔의 재무제표가 심각하게 위험하다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재적으로 대응한 것이라는 분석. 구조개편을 통해 위기를 잘 견뎌낸다면 재무적으로 더 강한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UBS의 니코스 데오도소폴러스 연구원 또한 "노텔은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며 "자산을 매각하고 전략적 핵심분야를 수정해 이전과는 다른 회사로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통신장비업계 지도가 바뀐다

노텔의 파산보호 신청으로 이날 뉴욕 증시의 통신 장비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다. 시스코 시스템즈가 5.2% 급락했고 쥬니퍼 네트웍스는 4.7% 떨어졌으며, 시에나와 브로케이드 등도 모두 하락했다.

노텔을 극단적 결정으로 밀어붙인 IT 관련 지출 급감은 결국 동종 업체들에게도 똑같은 악재이기 때문. 단기간에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업계에서 곡소리가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 속에 알카텔-루슨트처럼 현금 보유량이 적은 기업들이 집중적인 걱정을 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텔이 구조조정을 위해 자산들을 싼 값에 매각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결국 누군가가 싼 값에 그 자산을 사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고, 이를 통해 업계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

래디자산운용의 해리 래디 CEO 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강한 자들은 점점 더 강해지고 약한 자들은 점점 더 작아지거나 망하면서 통신 장비업계가 혹독한 변화의 바람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치의 스튜어트 라이드 연구원 역시 "주식시장에서는 일종의 `감염효과`로 동종업계의 주가가 부진하겠지만, 꼭 악재는 아니다"라며 "현실적으로 나머지 업체들에게 싼값에 우량자산을 매입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것이란 의사를 표명한 IT업계의 `바로미터` 시스코 시스템즈가 주목을 받는다.

시스코의 존 챔버 CEO는 최근 라스베가스 가전쇼에서 "향후 몇 년간 업계 내 자연스러운 통합이 일어날 것"이라며 공격적으로 인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래디는 "시스코와 같은 회사들은 프리미엄을 지불하지 않고도 1억~10억 달러 규모의 소기업이나 자산들을 골라내 매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에서는 여전히 통신업계가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통신 인프라 관련 투자도 이어지고 있어 기회는 있다. 노텔의 위축을 틈타 시장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이 위기를 통해 새로운 강자로 등극하거나 지존의 자리를 굳히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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