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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가맹점주로 살아간다는 것

전재욱 기자I 2022.10.23 14:01:14

SPL 사망사고 이후 불매운동 얻어맞은 파리바게뜨 가맹점
단골 떠나고 알바도 사표..1인 시위 탓에 오던 고객도 유턴
물류대란 때와 차원이 다른 고통..떠난 고객 돌아올지 의문
고통 아는지 모르는지 기자회견서 쏙빠진 '가.맹.점' 세글자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이 기사는 지난 21일 취재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의 상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한 내용입니다.

주말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이번 주부터 안 나온다. SPC그룹 평택 SPL공장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15일)하자 벌어진 일이다. 학생회에서 SPC그룹 계열사에서 일하지 말자고 한단다. 그 직원은 “피묻은 빵은 먹지 말고, 팔아주지도 말자는 게 학생들 생각”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러니 여기서 일하다가 받을 시선이 부담일 법도 하다. 불매 움직임은 알았지만, 알바까지 이럴 줄 몰랐다. 지난해 가게를 확장 이전하면서부터 같이 한 원년 멤버는 이렇게 곁을 떠났다.

평택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20대 근로자 사망 사고를 계기로 SPC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이 한산한 모습이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알바보다 먼저 고객이 떠났다. 파리바게뜨는 동네 장사고, 단골 덕에 먹고 산다. 사고가 나자 단골부터 발길을 끊었다. 매일 출근길에 들르던 고객들 얼굴이 며칠째 안 보인다. 중학생 딸을 둔 어떤 단골은 가게에 와서 도저히 못 사 먹겠다는 말을 하더니 빈손으로 나갔다. 사고 희생자가 20대 여성 가장이어서 그런지 엄마들, 특히 딸 가진 부모들 마음이 닫히는 듯하다. 하루는 가게 앞을 지나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아직 장사하네. 여기가 망하려면 우리가 안 가야 해.” 나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하는 소리였다.

1인 시위는 불난 데 기름을 부었다. 가게 앞에 SPC 불매 피켓을 든 이가 서 있으니, 오려던 고객도 발길을 돌렸다. 본사 잘못이지 가맹점주 잘못은 아니지 않으냐고 승강이했지만 물러가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이 없다. 출동한 경찰관은 1위 시위는 집시법으로 통제하기가 여의찮다고 하더니 돌아갔다. 명예훼손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면 무엇하랴. 여론은 고발당한 시위자보다 고발한 가맹점주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것이다. 손해 보는 쪽은 나다.

자연히 매출이 급감했다. 일일 매출이 평소보다 10분의 1로 줄었다. 이번 달은 적자 볼 게 뻔하다. 케이크류 타격이 크다. 케이크는 맛과 모양에 더해 이미지가 중요하다. 요즘은 파리바게뜨 케이크로 누구를 축하하고 어떤 일을 기념하는 게 거북한 모양이다. 샌드위치가 안 팔리는 것도 아프다. 매일 새벽 수고스럽게 가게를 여는 이유는 샌드위치를 팔려는 까닭이다. 오전까지 팔아도 사오십 개는 너끈하던 게 어제는 종일 두 개 팔렸다. 케이크랑 샌드위치는 양산 빵이 아니라 당일 못 팔면 버려야 한다.

이렇듯 팔지 못하는 것보다, 팔지 못하고 남은 것도 문제다. 가맹 계약에 따라 물품 매입, 보관, 폐기 비용은 가맹점주 부담이다. 그래서 최선은 최대한으로 사들여 최소한으로 남기는 것이고, 최악은 최소한으로 사들여 최대한으로 남기는 것이다. 요즘은 나날이 최악의 연속이다. 어제는 버릴 물량이 너무 많아서 주변에 인심을 썼다. 지인과 가족에게 나눠줬는데 돌이켜보니 괜히 찝찝하다. 그들이라고 SPC를 괘씸하게 보지 않았을까. 그들이 내가 나눠준 빵을 먹었는지, 나는 모른다.

급감한 매출보다 급감한 매출이 앞으로 올라올지가 더 걱정이다. 물론 장사가 늘 잘되는 건 아니다. 2017년부터 이어지는 제빵기사 직고용 갈등으로 고객이 이탈한 것은 약과다. 작년 이맘때 ‘운송 거부사태’도 죽을 맛이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손님이 마른 것은 똑같지만, 그때는 팔 게 없었고 지금은 팔 게 넘친다는 것이 다르다. 떠났던 고객은 물류난이 해소되자 얼마큼 돌아왔다. 지금은 그러리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주변 가맹점주 체감도 비슷하다. 우리끼리는 책임 있는 이가 자리를 물러나야 해결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안 들려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양재사옥에서 기자회견문을 읽는 도중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요청을 받고 마이크를 가다듬고 있다.(사진=뉴스1)
그래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연 기자회견(21일)에 거는 기대가 컸다. 늘 그랬듯이 본사는 거기까지였다. 앞으로 잘하리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다. 그럼에도 23일 SPC계열사 샤니에서 노동자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했다. 이 자리에서 가맹점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류대란 때 본사가 아니라 운송기사 잘못이라고 거리를 두던 게 떠올랐다. 이번은 본사 잘못이니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질 않은가. 질의응답 없이 떠나는 허영인 회장의 뒷모습은, 따갑게 쏘아붙이고 떠나간 단골의 뒷모습보다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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