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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위 "정치검열 아냐" vs 연극인들 "연극 말라는 행위"

김미경 기자I 2015.09.12 18:48:00

11일 도종환 의원실 입수자료 밝혀져
이윤택 박근형 작품 지원서 제외시켜
정부 공연 검열에 연극협회 반발 성명
문화예술위 "의견일 뿐 개입 아냐" 해명

자료=도종환 의원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최근 특정 작가·작품을 사전에 검열하고, 심의에 개입했다는 논란에 대해 “의견 일뿐 심사 개입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연극인들은 “지원금 상한제라도 있었나? 그런 심사기준을 공개한 적도 없다. 심사가 이미 끝난 사안이었다”며 “연극인들에게 연극을 하지 말라는 행위와 같다”고 지적했다.

예술위는 앞서 지난 11일 도종환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창작산실 연극 부문 선정과정에서 연출가 박근형의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빼달라는 식으로 심의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예술위는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논란,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걸개그림 논란 등 공공 지원을 받은 예술가의 작품 활동이 야기한 사회적 논란의 연장선상에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라는 작품에 대해 예술위 직원은 실무자로서 우려 의견을 제시했을 뿐 심의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며 해명했다.

이어 “녹취에 나온 직원의 ‘정치적인 이유’라는 발언 역시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인용된 ‘위원장 지시사항’ 이메일 역시 해당 사업의 심의와는 관련이 없으며 광주비엔날레 걸게그림 논란 즈음(2014년 8월)에 사회적 논란 예방 등 사업 추진에 있어서 일반적인 유의사항을 지시한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사업 중 희곡 분야 이윤택 연출가의 탈락 역시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예술위 측은 “동 사업은 신진 및 중진 작가의 창작을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인인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지원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이윤택 연출가는 문체부 산하 극단과 극장에서 최근 2년간 상당 규모의 제작비가 소요된 공연을 여러 차례 한 상황 역시 고려됐다”고 말했다.

또 “사업의 지원 여부는 심의위원회를 거쳐 예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실제로 그동안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심의위원회의 결과를 수정, 의결한 사례가 있었다. 심의위원 의견을 존중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예술위 전체회의가 갖고 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다”고 설명했다.

이에 연극인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식의 해명이다. 말 장난에 불과하다”고 개탄했다. 연극인 한 관계자는 “지원금 상한제가 있었나? 그런 심사기준을 공개한 적도 없다. 심사위원을 설득하지 못하자 작가를 직접 찾아가 포기를 종용한 것이 개입이 아니고 뭐냐”며 “정권 개입은 연극을 하지 말라는 행위와 같다”고 강조했다.

김재엽 연출가는 이번 사건 직후 페이스북 ‘대학로 X포럼’에 “(시국 선언 후) 여러 경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고, 작품 개발을 준비하던 공공극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극단 작업은 쉬었으며, 나는 오래도록 신작을 쓰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다.

한편 서울연극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문화계의 정치 검열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국가가 예술단체에 대해 지원을 하면서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처참히 무너트린 행정권력과 관료들의 작태를 보여 준 사태인 것”이라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반헙법적, 반민주적, 반예술적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작태에 연극계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예술계와 연대해 이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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