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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건보재정절감, 제약사만 짜낸다고 될일인가

천승현 기자I 2013.03.26 09:43:15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보건당국이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또 다른 약가인하 정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년보다 판매량이 급증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골자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4월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의약품 1만3814개 품목중 6506개의 보험약가를 평균 21% 인하하는 고강도 약가인하 정책을 단행했다. 이 약가인하 정책은 단기적으로 효과를 봤다. 강력한 약가인하를 통해 지난해와 올해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각각 전년대비 2.8%, 1.6%로 억누를 수 있었다.

결국 약가 인하로 재미를 본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해 또 다시 약가인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지속적인 감시에도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아직 약값에 거품이 껴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정부가 약가 인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명분인 셈이다.

그러나 약가인하로 인한 재정 확보 효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약가인하만으로는 극단적인 재정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속적인 약가인하 정책으로 추가적인 약가인하 여력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새 정부가 추진하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수 밖에 없어 재정 확보는 절실한 상황이다. 복지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4대 중증질환 보장 등 건강보험 공약 이행을 위해 4년간 총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재정확보를 위해 약가제도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미 보건당국은 지난 2011년 약품의 적정 사용 유도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적정기준가격제’와 ‘총액관리제’의 도입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참조가격제’라고도 불리는 적정기준가격제는 동일성분 또는 동일효능 의약품에 대해 일정가격을 정하고, 그 가격보다 비싼 약을 사용하면 초과액을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다. 사실상 가장 싼 약을 사용할 때만 100%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는 제도로 유럽에서 널리 시행하고 있다.

총액관리제는 약품비의 총액을 설정하고 총액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의료기관이나 제약사의 환급으로 약품비 지출 총액을 관리하는 제도다. 두 가지 제도는 재정 절감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지만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반발을 우려해 시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약품비를 줄이기 위해 처방 약 개수를 줄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난 2011년 기준 처방 건당 약 품목수는 3.75개로 OECD 국가들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그럼에도 보건당국은 약 품목수를 줄이는데는 팔짱만 낀 채 가장 손 쉬운 약가 인하에만 매달리는 모양새다.

제약사 짜내기를 통한 단기적인 재정 확보보다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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