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노조보다 블라인드’…직장인들이 온라인 대나무숲에 몰리는 이유

최정훈 기자I 2022.02.01 22:00:00

400만 가입자 블라인드, 최근 노사관계 이슈 끌어모아
직무만족도 낮을수록 블라인드 서비스 만족도 높아
직장인들, 회사 문제 제기 통로로 노조보다 더 선호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2014년 ‘땅콩회항’ 사건부터 IT업계의 임금 인상,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에 이어 스타벅스 트럭시위에 이르기까지 최근 노사관계의 이슈를 끌어모으는 곳이 있다. 바로 4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가진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다.

특히 젊은 세대 직장인들이 공론장으로 활용하는 블라인드는 노동조합보다도 회사에 대한 문제 제기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조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데 조직 외부의 온라인 광장을 활용하는 걸까.

지난해 10월 7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도로에 스타벅스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트럭이 정차해있다.(사진=연합뉴스)
블라인드는 일부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내 익명 게시판이 확실히 담보하지 못하는 익명성 보장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었다. 가입자 수는 2020년 10월 300만명에서 지난해 10월 400만명으로 증가했다. 미국 가입자까지 포함하면 가입자가 560만명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평균 3.40점으로 보통(3점)을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직무만족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블라인드 사용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5월 21일부터 7월 20일까지 블라인드 게시판에 게시된 설문조사 10개 문항에 답한 2289명이 응답한 결과다.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 회사 또는 업계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응답이 3.86점으로 가장 높았다. 직장을 옮기려는 사람일수록 정보 확인차 블라인드를 이용했다. ‘최근 1년 사이에 이직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문항에 ‘매우 동의’나 ‘동의’한 응답자의 경우 정보 확인차 블라인드 사용한다는 응답이 4.05점, 4.08점으로 높았다.

이어 직장 내 갑질이나 성희롱·성폭력 등과 같은 ‘조직 내 잘못된 관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 사용한다’는 응답도 3.52점으로 높았다. 특히 회사 채널에서 활동을 많이 할수록, 상사와 동료로부터 업무상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할수록 문제 제기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응답이 높았다.

그러나 문제 제기 목적으로 블라인드를 활용하는 이용자가 실제로 문제가 해결된 경험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라인드를 통해 해결되지 않았던 조직 내 문제가 해결된 적이 있다’는 응답은 2.61점, ‘블라인드로 인해 회사가 조직 내 소통을 활성화하는 조치를 취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2.71점으로 보통(3점)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지료=한국노동연구원
그럼에도 응답자들은 회사의 문제 제기를 활용하는 통로로 노동조합보다는 블라인드를 활용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회사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때 어떤 발언 채널을 활용할지 묻는 질문에는 블라인드가 30.2%로 가장 높은 응답이었던 ‘상사 면담’(31.1%)과 비슷한 수준을 차지했다. △팀미팅(15.3%) △노동조합(11.1%) △기타(7.3%) △노사협의회(4.9%) 순이었다.

업계별 차이도 있었다. 조선, 영화·컨텐츠, 철도, 방산, 보험, 은행, 공기업, 병원 등에서는 블라인드가 상사 면담을 제치고 1순위를 차지했다. 반면 노동조합은 4위에 그쳤다. 다만 공기업, 항공 등에서는 노동조합이 2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노동조합이 상대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을수록 효과를 경험했거나 기대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노동자들이 속한 조직 외 발언 채널을 활용하는 주된 이유가 의견 제시 및 제장, 고충처리보다 정보 획득 및 공유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아직 블라인드가 적극적인 발언 채널로서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며 “그럼에도 블라인드에서 발화되어 사회적 이슈로 확산한 여러 사례서 확인 되듯이 조직 외부의 온라인 발언 채널의 사회적 기능이 확산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