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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경제 보기]“주식은 기다림”이라던 ‘신과 함께’ 성주神…아파트 샀다면?

이명철 기자I 2019.02.23 10:00:00

신흥국 주식·펀드에 1억 투자해 70% 손실…사채도 끌어써
2015년 중국발 ELS 대란 오버랩…반면 부동산은 고공행진
중국 증시 지난해 부진 벗고 최근 회복세…‘존버’는 선택

[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영화를 좋아하는 경제지 기자입니다. 평론가나 학자보다는 식견이 짧지만 ‘가성비’ 좋은 하이브리드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영화 속 경제 이야기를 제멋대로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글 특성상 줄거리와 결말이 노출될 수 있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포스터.(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염라대왕님도 이승의 주식은 손대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염라대왕이 손을 대지 못한다니, 주식은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곶감’보다도 두려운 존재인가 봅니다. 이 대화가 나온 영화는 ‘신과 함께-인과 연’(이하 신과 함께2)’입니다. 1편인 ‘신과 함께-죄와 벌’에 이어 두 편 모두 천만관객 이상을 동원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죠. 그런데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판타지 영화에서 왜 주식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집을 지키는 성주신(마동석)이 주식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알아보겠습니다.

‘신과 함께-인과 연’은 수홍(김동욱)의 저승여행과 저승차사들의 전생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영화 스틸 컷, 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원작 영리하게 비틀어 흥행 성공…완성도·재미는 ‘글쎄’

영화 ‘신과 함께’는 같은 이름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었습니다. ‘파괴왕’으로도 유명한 주호민 작가가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죠.

각자 영역이 지닌 특성 때문일까요? 지금까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여러 편 나왔지만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강풀의 웹툰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중 ‘이웃사람(신과 함께에 출연한 마동석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영화이기도 하죠)’을 제외하고 ‘아파트’ ‘순정만화’ ‘통증’ 등은 모두 흥행에 실패합니다.

오랫동안 연재하는 웹툰과 2시간 내 승부를 봐야하는 영화는 서사가 같을 수 없습니다. 웹툰상으로는 충분히 재미있는 사건이 스크린에서 볼 때 감흥을 줄 수 없는 경우도 있죠. 웹툰의 이야기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가 원작 팬들 입장에서 용납되지 않고, 원작을 모르고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와닿지 않아 ‘이도저도 되지 않는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김용화 감독은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인지하고 아예 ‘신과 함께’ 이야기의 틀을 크게 바꿉니다.

웹툰은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3부로 나뉘는데 영화는 1, 2편으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저승편의 핵심인물인 진기한을 강림도령(하정우) 한명으로 합쳤으며 과묵함이 매력인 해원맥(주지훈)은 입방정 캐릭터로 그립니다. 평범한 인물이던 자홍(차태현)을 아픔을 지닌 의인으로 묘사하고 동생인 수홍(김동욱)이라는 배역을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승편에 나온 가택신들도 성주신 하나로 통일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원작 팬들로부터는 큰 비난을 받지만 애초에 천만관객을 염두에 둔 감독은 애매함을 버리고 영화만으로도 흥행에 성공하겠다는 계산이 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 시도는 성공합니다. 1편에서 김동욱의 가슴 절절한 연기는 관객들(저마저도)의 눈물을 쏙 빼놓습니다. 2편은 전편 흥행을 바탕으로 저승차사들과 성주신의 ‘케미’가 웃음과 감동을 유발하죠.

다만, 원작에서의 영리한 변화와 별개로 영화 자체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제대로 선보이지 않던 시각특수효과가 제대로 구현되고 볼거리가 많긴 했지만 1편은 다분히 신파적이었습니다.
전생을 다룬 영화 2편에서 본격적으로 갈등하고 번민하는 강림(하정우)과 해원맥(주지훈). 멋있고 슬프긴 한데….(영화 스틸 컷, 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의 전작인 ‘국가대표’나 ‘미녀는 괴로워’ 등에서도 알 수 있지만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는 대목이 너무 적절하게 배치돼 인위적이라는 느낌이랄까요.

그나마 모든 것이 새로웠던 1편과 달리 2편은 전작 후광이 컸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와중에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동시에 다루기엔 하얀 스크린이 너무 작았기 때문일까요. 과거의 이야기를 대부분 성주신의 내레이션에 의지하는 부분은 지루함을 안깁니다. “옛날 옛날에…”라고 시작해 “그때였어요”라고 말해주는 할머니처럼요.

성주신(마동석, 왼쪽)은 저승차사들을 무릎 꿇리는 힘의 소유자이지만 주식 투자는 ‘꽝’이다.(영화 스틸 컷, 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펀드는 반드시 회복된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지만

주식 투자 이야기는 늙고 병든 할아버지 허춘삼(남일우)과 손자 허현동(정지훈)이 살고 있는 재개발 예정지에서 나옵니다.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보다 못한 성주신은 사람의 모습으로 현실에 나와 살림을 돕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재개발 보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주식과 펀드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고 맙니다.

“영감을 설득해서 이머징마켓 펀드랑 주식에 들었다. 지금은 일시적 유동성 위기일 뿐 펀드는 반드시 회복된다”고 힘줘 말하는 마동석의 모습에 웃음이 나옵니다. 내가 산 주식이나 펀드는 항상 떨어지지만 ‘충격은 제한적,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증권가의 분석이 겹쳐서일까요? 실제로 증권가가 운집한 여의도의 한 영화관에서는 이 장면이 나오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주식 투자 사건은 단순히 웃음만을 주기 위한 요소가 아닙니다. 원작에서 허춘삼은 악랄한 재개발 용역들과 갈등을 겪습니다. 가택신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저승차사들의 옛날이야기도 풀어야 하고 김동욱의 저승 여행도 그려야 합니다. 재개발의 현실까지 넣기에는 시간이 촉박할뿐더러 자칫 분위기도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영화상 어려움을 명료하게 표현하고자 ‘주식·펀드에 돈 다 잃고 사채까지 투자한’ 모습을 만든 것입니다.

성주신의 이야기를 현재로 대입해볼까요. 그가 투자했다는 이머징마켓이란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흥국시장을 이야기합니다. 2015년 8월께 파생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이 기초로 한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급락하면서 국내에서는 대규모 손실 사태가 불거진 적이 있습니다. 아마 영화도 이때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쓴 것 같습니다.

마동석은 영화에서 원금 1억원에 70% 손실을 보고, 이를 메우기 위해 사채 3억원을 끌어다 씁니다. ‘염라대왕도 주식은 하지 말라’는 덕춘(김향기)의 만류에도 “주식은 기다림”이라며 존버(오랫동안 기다린다는 뜻의 속어)의 자세를 취합니다.

차라리 “아파트를 해놓지 그랬냐”는 해원맥의 조언을 들었으면 어땠을까요? 만약 1억원의 자금을 갖고 갭투자(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부동산 투자 형태)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성주신(오른쪽)이 해원맥(주지훈)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갭투자의 달인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영화 스틸 컷, 이미지=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갭투자의 성지’로 불리던 서울 성북구 길음뉴타운을 예로 듭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ELS 대란이 불거졌던 2015년, 이 지역 길음뉴타운2단지 푸르지오 전용 84㎡의 1분기 매매가는 4억원 초반대, 전세가 3억원 안팎입니다. 대략 1억원 정도면 전세를 낀 상태에서 매입이 가능합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3분기에 최고 6억5000만원까지 오릅니다. 1억원 가량을 투자해 두 배인 2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입니다(양도세 등은 차치하고요). “IMF(외환 위기)와 리먼브라더스를 몸소 겪었다. 부동산은 다 버블”이라는 성주신의 안목이 의심 가네요.

어찌됐든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맞습니다. 뉴스에서는 “중국 정부의 재정 및 인프라 확대발표에 따라 글로벌 증시 호황이 예상된다”며 “이머징마켓 펀드시장 대반격이 시작됐다”고 보도합니다. 성주신은 소멸하고 말았지만 그가 남긴 투자 상품이 빛을 발한 것이죠.

지금도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마켓의 반격이 기대됩니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앤가이드 조사를 보면 중국에 투자하는 신흥국 펀드의 최근 한달간 평균 수익률은 8%에 달합니다. 최근 1년간 수익률이 마이너스(-) 15% 이상인 점을 감안할 때 급격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네요. 지난해 신흥국 시장은 미국의 달러 강세와 무역분쟁, 글로벌 경기 둔화 같은 악재에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흡사 영화처럼 경기 부양을 위한 정책이 나오면서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말 주식은 기다림일까요. 물론 역사적인 흐름을 볼 때 주식은 우상향 추세를 보입니다. 몇만원에 불과하던 삼성전자(005930) 주식은 한때 300만원을 바라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투자 상품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겠죠. 선택에 따른 결과는 항상 본인의 몫임을 염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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