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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알못 가이드]모든 게 함의, 대통령-與野 회동의 정치학

유태환 기자I 2020.05.30 11:00:00

장소부터 참석 대상까지 모두 정치 의미
28일 文 취임 뒤 첫 양당만 부른 靑 회동
코로나 사태서는 국회 회동, 입법부 예우
모친상 조문 답례 차원으로 첫 관저 초청
단골 메뉴 비빔밥, 주호영 배려 사찰음식

정치권에는 특유의 문화, 제도가 존재합니다. 정치 기사에도 어렵고 난해한 정치권 고유의 용어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분량 제한 때문에, 때론 당연히 독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설명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를 알지 못하는 독자’도 쉽게 관련 기사를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정알못 가이드’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28일 청와대 오찬 회동을 갖고 향후 정국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21대 국회와 관련한 문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간 첫 회동임과 동시에 문재인 정권 출범 뒤 처음으로 대통령이 거대 양당 만 초대한 만남이기도 합니다.

또 장소는 청와대 본관이나 관저가 아닌 상춘재였습니다.

음식은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회동의 단골 메뉴인 화합의 상징 비빔밥이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주 원내대표를 배려해서 사찰음식인 능이버섯 잡채를 준비하고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으로 산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장소부터 참석 대상, 음식까지 대통령과 제 정당 간 회동에는 모두 정치적인 합의가 녹아들어 있다는 분석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여야 원내대표 오찬 회동에 앞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준표, 영수회담 요구하며 5당 초청 불참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을 가졌을 당시부터 기존 관례를 깨고 정의당 끼워 넣기를 고집해왔습니다. 당시 청와대에 모인 5당 중 원내교섭단체가 아닌 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했습니다.

나머지 민주당, 한국당(통합당의 전신),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모두 교섭단체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청와대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이합집산을 거친 뒤에도 비교섭단체인 평화당과 정의당을 포함한 5당 회동 체제를 고집했습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지정 법안 처리 과정에서 입증했듯이 당연히 범여권 정당을 포함시켜 논의에 유리한 구도를 갖추기 위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정치권의 중론이었습니다. 실제로 홍준표 전(前) 한국당 대표는 이런 형태의 문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동을 “구색 맞추기”·“들러리 세우기”라는 취지로 비판하면서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주장하면서 1:1 단독 청와대 회동을 성사시키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과 회동에서 어떤 구도를 형성하느냐 자체에 제1야당 대표로서의 위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통합, 비교섭 포함에 “여여여여야정협의”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를 포함해 과거 제1야당 지도부도 줄기차게 대통령과 단독 영수회담을 요구했습니다. 대통령과 자신을 동일 선상에 놓으면서 대권주자 이미지를 부각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도 야당이었을 당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은 보수 정권에서는 대통령을 향해 “제1야당 대표만 독대하라”고 요구하면서 여권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요구했다가 원내대표와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 대표·원내대표까지 포함하는 5자 회동을 청와대에서 역제안하자 “2인분을 시켰는데 5인분을 가지고 나왔다”고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는 웃지 못할 사례도 회자됩니다. 탄핵 국면이던 2016년 11월에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가 의견 수렴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당 내외 비판에 직면해 이를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재개되지 못한 것 역시 참석 대상과 관련한 논란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정국 경색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통합당이 비교섭단체인 평화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이 들어가는 여야정협의체에 대해 “여여여여야정협의체”라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오찬을 마친 후 청와대 경내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에 합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본관보단 상춘재가 허심탄회한 분위기

장소 역시 의제와 사안,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크게 여야 지도부와 청와대 본관·상춘재·관저와 국회에서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 중에서 비교적 빈도가 높은 본관과 상춘재는 각각 실무적인 논의와 허심탄회한 대화로 분위기가 다소 다릅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1월 제1차 여야정협의체는 청와대 본관에서 진행했습니다. 여야 원내대표들과 국정 운영 실무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업무공간의 의미가 있는 본관을 택했다는 지적입니다.

반면 이번 회동이나 취임 뒤 첫 원내대표와 회동은 상춘재를 이용했습니다. 딱딱함을 벗어나서 편안하게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문 대통령이 여야 대표들을 청와대 관저로 부른 경우도 지난해 11월 딱 한 차례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 모친상에 여야 대표들이 조문을 온 데 대한 답례 차원이었습니다.

청와대 내부에서 대통령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열어준 셈입니다. 딱딱한 격식보다는 소탈하게 개인적인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안정 과반 확보, 정의당 우군 필요 소멸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에는 국회를 직접 찾아 여야 대표들과 회동을 갖기도 했습니다. 예산안 시정연설 등에 앞서 잠시 여야 대표와 환담을 나눈 경우는 있었지만 대통령이 회동만을 위해 국회에 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입법부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표시한 것으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날로 확산할 시기였습니다. 추가경정예산안의 빠른 통과와 코로나19 관련 초당적 대응에 대한 대통령의 절실함이 묻어나온 장소 선택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의미들이 녹아 있는 만큼 향후 여야정협의체가 재가동될지 여부도 청와대가 교섭단체 양당만을 배석시키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통합당 원내관계자도 통화에서 “정의당을 넣을 거면 아예 교섭단체를 없애지 교섭단체를 왜 만드느냐”며 “국회 논의에 작은 정당을 끼워 넣어서 의사진행을 어렵게 하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177석의 안정적인 과반을 확보한 만큼 이제 더이상 정의당을 굳이 우군으로 확보할 필요성이 소멸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문 대통령이 민주당과 통합당 원내대표만 초청해 회동을 가진 것이 이런 국정운영 방향의 신호탄이란 해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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