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7)군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후 4시쯤 연락이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학교 동아리 후배를 만나고 오던 길이었다. A군의 아버지는 사고 뉴스를 보고 아들에게 30통 넘게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만 길게 이어졌다. 항상 ‘아빠 사랑해, 늙지 마’라고 말해주던, 하나밖에 없는 착한 늦둥이였다. A군의 아버지는 “공부를 하라고 야단을 쳤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며 추적추적 비 내리는 하늘에 담배 연기를 날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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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3)씨는 인근 식당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했다. 생일인 큰 아들에게 “미역국을 끓여놨으니 챙겨 먹으라”는 전화 통화가 B씨가 전한 마지막 말이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억척같이 살았던 그였다.
부모와 떨어져 살던 C(29)씨는 이날 마침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서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가 봉변을 당했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아버지는 사고 직후 구조됐지만, 뒷좌석에 앉은 C씨는 뒤늦게 구조돼 끝내 숨을 거뒀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사고 당일까지도 열심히 살았던 자상한 아버지이자 따뜻한 어머니였고, 착한 아들, 딸들이었다. 이들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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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찰은 합동수사팀을 수사본부로 격상하고 사고원인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찰 등 합동감식반은 전날 오후 2시부터 사고 현장을 감식했다.
또 광주경찰청은 10일 오후 철거현장 관계자와 목격자 등 총 13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마쳤고, 과실이 중하다고 판단되는 철거공사 관계자 1명을 입건했다. 같은 날 오후 4시쯤부터 철거공사 업체 등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수사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