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명수號 사법부의 법치유린

송길호 기자I 2021.02.10 06:10:00
[이데일리 송길호 매크로 에디터] 헌정사상 초유의 판사 탄핵, 이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정치적 외풍에 흔들린 사법부의 부끄러운 현실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무죄 판결이 난 부장 판사를 임기 한달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군사작전하듯 탄핵으로 내몬 집권 여당. 정치권 눈치보기에 급급, 해당 판사를 ‘탄핵 제물’로 삼으려던 대법원장. 집권당은 일선 판사들을 은근히 압박하며 길들이려 하고 법보다 정치가 우선인 대법원장은 권력의 심기를 고려해 이를 묵인한다. 여기에 막장 수준의 진실공방 과정에서 드러난 잡아떼기, 거짓해명, 말 뒤집기, 그리고 버티기…. 사법의 권위와 신뢰는 무너지고 법치는 뿌리채 흔들린다.

판사 탄핵 과정에서 잇따른 거짓말 논란으로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9일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들어 사법의 정치편향, 이념편향은 예견된 일이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모두 진보성향의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등 이른바 ‘우국민’ 출신 일색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필두로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11명중 6명, 헌법재판관 8명중 5명이 특정 정치진영의 이너서클에서 나왔다. 사법부 주류교체는 ‘코드인사’로 이어지고 사법의 정치화는 심화한다.

정치권력에 포획된 사법부의 일탈은 진보를 표방한 운동권 정부의 그릇된 법치관을 반영한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가 규정하듯 이들에게 사법기관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통제하는 국가기구(state apparatus)일 뿐이다. 법은 정치적 목적을 위한 통치수단, 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 그래서 이들에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정당한 명제다.

히틀러도 그랬다. 형식적인 법치의 기반 위에서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했다. 제국 의회에서 다수결의 힘으로 통과시킨 수권법을 통해 바이마르헌법을 무력화하고 독재를 강화했다. 공산당 영도 아래 법률에 규정된 직권만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 인민법원, 정치권력에 예속돼 정권 보위부로 전락한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법원 모두 마찬가지다. 정치권력· 당 우위의 전체주의적 체제에서 법치는 형해화된다.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진열돼 있다.
정치권력에 굴종하는 사법부는 법복만 걸친 정치법관을 양산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법률을 이용하고 법치를 유린하는 법률 기능공들이다. 이들은 헌법 103조(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를 변용한다. 김 대법원장이 무심코 내뱉었듯 이들에게 ‘양심’이란 헌법과 법률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 양심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공화제를 통해 주권재민을 실현한다. 공화제의 기본은 권력분립. 입법·행정·사법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정치권력은 폭주하고 정작 국민은 주인 노릇을 할 수 없게 된다. 공정한 심판자, 정치적으로 예속되지 않은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사법부만이 법치를 실현하고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곧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정치권력이 법 위에 존재하는 전체주의 체제, 바로 그 어두운 잔영이 문재인정부에 짙게 드리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법시스템을 흔드는 대법원장의 일탈과 기만은 정치권력에 예속된 사법부의 민낯이다. 공화제 복원을 모토로 집권한 촛불 정권이 스스로 법치를 훼손하고 사법정의를 무너뜨리며 공화제를 파괴하는 건 국민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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