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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 '조삼모사' 될 판인 출국자납부금 감면

이선우 기자I 2024.04.11 06:00:00
[이데일리 이선우 기자] 이르면 올 여름휴가부터 국민 1인당 해외여행 비용이 최소 4000원씩 줄게 됐다. 정부가 항공료에 포함해 부과하던 1만원 출국자납부금을 7000원으로 낮추고, 국제질병퇴치기금 1000원을 폐지하기로 하면서다. 면제 대상인 만 12세 미만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감면 규모는 더 커진다.

국민 부담 덜지만 관광진흥기금도 줄어

출국자납부금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도입됐다. 일종의 사치세 성격이었다. 정부가 산정한 출국자납부금 예상 감면 규모는 1300억원. 한해에 4680만명이 해외로 나가면서 역대 가장 많은 출국자납부금(4255억원)이 걷힌 2019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동안 납부 사실조차 거의 모르던 ‘그림자 세금’을 줄여 국민 부담을 덜었다는 점은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출국자납부금을 감면한 만큼 전체 관광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다. 정부 관광 예산의 절대 비중(85%)을 차지하는 관광진흥기금(이하 기금)이 함께 줄게 되면서다. 출국자납부금은 카지노납부금, 면세특허수수료 등 기금 재원 가운데 가장 큰 4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출국자납부금 감면 예상치 1300억원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올해 전체 관광 예산(1조3100억원)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장 내년부터 재정 당국에서 예산을 늘려주지 않는 한 문체부 관광 예산 축소는 ‘불 보듯 뻔한’ 시나리오인 셈이다.

관광 예산의 또 다른 돈줄인 일반·지역발전특별회계 예산을 늘리면 되지만, 왠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국민 부담을 줄이려 감면한 ‘세금’을 되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수입이 준 만큼 관광 예산을 줄이는 방법도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선택지다. 지역 관광 활성화로 생활인구를 늘려 지방 소멸을 막겠다고 한 정부 정책과도 엇박자다.

출국자납부금 감면이 자칫 ‘조삼모사’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지금보다 30% 더 해외로 나가도록 해외여행 장려 캠페인을 해야할 판이라는 웃지 못할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관광 예산 기금 의존도 커 세금 투입해야 할 수도

이같은 문제는 기금에만 의존해 온 ‘천수답 재정 구조’가 원인이다. 문체부 관광 예산의 지나친 기금 의존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기금 수입 규모에 따라 그 여파가 전체 관광 예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관광 재정의 기금 의존도는 해마다 늘어 2019년 70%이던 비중이 85%까지 높아졌다.

기금 재정이 그리 탄탄한 것도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금 수입의 70%를 책임지던 출국납부금, 카지노납부금이 제로(0)에 가깝게 줄면서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3조원에 가까운 돈을 빌린 상태다. 기금 자본금 830억원의 40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앞으로 10년 후부터 원금을 갚으면 돼 당장 부담은 적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금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출국자납부금 등 관광진흥기금 재원과 활용 문제는 그동안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난제 중의 난제다. 이번 출국자납부금 감면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광 재정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출국자납부금 감면으로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국민 부담 경감이라는 본래 취지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기금과 관광 재정의 역학관계를 면밀히 따져 구조적 모순을 피하고 파장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가 딱 맞물려 제대로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정합성’을 갖춘 정책이라야 복잡다단한 이해관계, 역학구도에서 제 기능을 하고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는 임시방편식 정책은 외려 국민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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