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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화폐 vs 투기상품…비트코인 5만달러도 넘었다

김정남 기자I 2021.02.17 06:38:53

비트코인 5만달러↑…시총 1조달러 육박
머스크 비트코인 투자 소식 후 본격 강세
마스터카드, 모건스탠리, BNY멜론 가세
기존 법화 대체 가능성은 여전히 회의적
닥터둠 루비니 "지금 가격, 말이 안 된다"

일론 머스크 테스라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제공)
(사진=AFP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비트코인은 미래의 화폐인가. 아니면 투기용 상품인가. 가상자산 시가총액 1위인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처음 5만달러를 돌파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논리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비트코인 투자 소식이 알려진 이후 모건스탠리, 뉴욕멜론은행(BNY멜론), 마스터카드 등 주요 금융사들이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개인이 아니라 기관이 움직인다면 2017년 말 폭락장과는 얘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동성 장세까지 더해져 강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많아졌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워낙 큰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동시에 나온다.

단숨에 5500만원 돌파한 비트코인

16일(현지시간) 가상자산 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20분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1개당 4만8672달러(약 53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24시간 내 기준으로 장중 5만341달러를 기록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5만달러를 넘은 건 2009년 등장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장중 시총은 9378억달러(약 1133조5000억원)까지 불어났다. 비트코인 시총 1조달러 시대가 눈 앞에 다가온 것이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단위인 비트(bit)와 동전을 뜻하는 코인(coin)을 합친 용어다. 가명의 프로그래머 나카모토 사토시가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기존 법정화폐(legal tender)를 대신할 새로운 화폐를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2009년 개발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미국이 본격 양적완화에 나선 이후 달러화 가치 하락 우려가 커지면서 더 주목 받았다.

개발 의도와 달리 비트코인은 그간 화폐와 거리가 멀었다. 주식 등 다른 자산들보다 시세차익을 크게 볼 수 있는 변동성 큰 상품 중 하나로 여겨졌다. 실제 불과 1년도 채 안 된 지난해 3월 중순만 해도 비트코인 가격은 지금의 10분의1 수준인 1개당 5000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5만달러를 돌파한 이번 랠리 역시 그 시작은 테슬라의 발표 하나였다. 지난 8일 테슬라가 자사의 전기차 결제에 비트코인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전하면서 4만달러를 밑돌던 가격이 갑자기 4만달러 중후반대로 뛰어오른 것이다. 당시만 해도 테슬라 효과에 따른 일시적인 폭등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테슬라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의 미국 내 팬덤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만 테슬라 이후 굴지의 기업들이 잇따라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라즈 다모다란 마스터카드 부사장은 테슬라의 발표 직후인 11일 자사 블로그에 “올해 안에 가상자산 결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경쟁업체인 비자는 이미 도입 계획을 밝힌 상태다. 같은 날 트위터는 비트코인 결제서비스 제공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 이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BNY멜론이 올해 자산운용사 고객을 위해 가상자산 서비스를 한다고 밝혔고, 블룸버그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시를 글로벌 비트코인 허브로 만들겠다”(자신의 트위터 계정)는 앤드루 양 뉴욕시장 후보의 언급까지 전해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상승을 거듭했다. 캐나다에서는 최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처음 당국 승인까지 받았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이날 비트코인 매수를 위해 6억달러 규모 전환사채(convertible notes) 발행 계획을 전했다. 마이클 세일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머스크와 공개적으로 대화하면서 비트코인 매수를 독려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비트코인 ‘얼리 어댑터’라고 CNBC는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비트코인 가격 안정성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관측이 커졌다. 2017년 말 2만달러 가까이 폭등했다가 몇 달 만에 3000달러대까지 폭락했던 전례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다. 세일러 CEO는 “비트코인은 3년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산이 됐다”고 했다. 돈을 묻어두기만 하면 다 오르는 위험 선호 리플레이션 국면에서 비트코인값은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LMAX디지털의 조엘 크루거 전략가는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수요가 강해져 가격을 유지하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이미 과열…투자 주의해야” 경고도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강세장을 떠받치고 있는 법화 대체 가능성, 즉 비트코인을 통한 결제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비트코인은 화폐(real currency)가 아니다”며 “ECB는 그걸 사지도 보유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돈세탁 가능성을 들어 비트코인에 대한 추가 규제를 촉구했다. 비트코인은 특유의 익명성 때문에 실제 돈세탁 등 불법 거래에 악용된 전례가 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자산을 통한 불법 거래는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ridiculous) 가격에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며 “그들은 분명 손실을 볼 것이고 한 번 손실을 보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원자재들, 심지어 금조차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거의 없다”며 “또 채권 이자 혹은 주식 배당 같은 안정적인 수입마저 없다”고 했다.

CNBC에 따르면 도이체방크가 진행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을 금융시장의 가장 심각한 버블로 꼽았다. 월가의 한 금융사 관계자는 “요즘 보이는 시세 자체가 비트코인의 단기 변동성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최근 트위터 글. (출처=누리엘 루비니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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